작가처럼 보지 못한 타인을 배려하는 이가 있을까? 작가만큼은 독자를 위해 가독성이라는 친절함을 글에 녹여야 하는 걸까? 글을 잘 쓴다는 건 결국은 타인을 배려하는 글 쓰기인 걸까? 목적이 있는 글쓰기와 읽는 이를 고려한 글쓰기는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나를 위한 글쓰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타인을 위한 글쓰기로 향한다. 수많은 독자의 계층 중 ‘나와 동질한 결의 삶을 살아본 사람.’을 콕 집어 만나고 싶은 걸 보면. 아무렴. 결국 나 역시도 공감을 원하는 것이자, 배타적인 시선으로부터의 반감은 사지 않고 싶은 마음인 게다.
묵혀둔 마음 털어내자고 오랜만에 쓰는 글도 다시 읽으며 다듬는 일이 잦다. 결국은 저장 버튼을 누르고 글을 발행하지는 못한다.
잘 쓰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잘 쓴다는 건 누가 평가해 주는 것일까. 친절한 퇴고 작업은 스스로의 만족감을 향한 것일까. 아님 타인을 향한 마음일까. 주제가 정해진 글은 생각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꺼내놓아야 할까. 글로 내 보이는 마음의 솔직함은 또 어디까지여야 할까.
스스로에게도 고백하기 어려운 솔직함을 타인에게 기꺼이 내 보인다는 것은 글을 쓰는데 나를 가로막는 큰 어려움이자, 몹시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가볍게 쓰는 대부분의 글은 철저한 자기 독백 정도 되는 것 인데도 말이다.
개인적 감정이 비판받거나 평가받지 않아도 되고 보편적이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감정소비 창구로 글을 선택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숱하게 퇴고를 하는 내 모습이 이질적이고 모순적이다.
글쓰기가 좋은 이유는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내 감정을 탈탈 털어 낼 수 있어서였다. 이면에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나를 위해 잘 쓰고 싶은 건지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 잘 쓰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든 잘하고 싶은 욕심이 발동하는 건지도. 재주 없는 글을 쓰고 읽다 보면 맞춤법 틀린 곳, 부적절한 조사와 어미의 선택들이 눈에 띄고 또 띈다. 수정과 저장을 누르길 반복한다.
작가의 친절한 퇴고 작업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 인지 타인을 향한 배려심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저장되어 있는 글 중 몇 개를 불러와 어설픈 솜씨로 다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