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쉰 지 1년이 넘었다. 내가 일을 안 하고 주부로 산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기에, 그만둘 때에도 그만둔 이후에도 나는 언제 다시 무슨 일을 할지를 가장 많이 생각했다.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집안일에도 애정을 주면서 가정을 가꿔봐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내 신경은 이미 그만둔 직장과 앞으로 취직할 걱정에 더 많이 쏠려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퇴사 후 3개월이 넘도록 나는 계속 무력했다. 마치 일하는 나를 잃어버리고 반쪽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주부로 지낸 지 1년, 지금 이 시점에 내가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는 주방 일을 하는 내 손이 엄청 빨라졌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사람들과의 교류이다.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내 손이 빨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능숙해졌다는 것이고 나는 이것을 결혼 10년 만에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류는 무엇보다도 동네 이웃들, 아이 친구들 어머님과의 교류이다. 회사에서만 사회생활을 하던 내가 갑자기 덩그러니 집에 남겨졌을 때 한동안은 정말 너무나 외로웠다. 회사 메신저로 수다를 떨던 직장 동료들이 한 번에 사라지고 나니 내게 남은 대화 상대는 아이들 뿐이었다. 퇴사 후 한참 침잠되어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역시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넉살 좋게 먼저 말도 걸고, 처음 보는 동네 주민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아이 엄마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이제 내가 너무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겠다. 흔히들 말하는 아줌마의 능력 같은 것이 나에게도 조금 생겼는지도. 그러나 지금 이런 나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가졌던 그 모든 날카로움과 짜증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선 나라는 사람 그 자체라고 생각했던 그 뾰족함이 어느새 없어졌다.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는 퇴근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일의 양과 난이도에 지친 나는 집에 와서도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며 동시에 이것저것 가르쳐야 했기에 쉴 수 없었다. 동네 사람이든 아이 친구 엄마들이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이든 누군가에게 웃으면서 대꾸하고 교류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모두 피하고 싶고 그저 빨리 모두가 잠든 밤이 와 혼자가 되기만을 기다렸을 뿐이다.
저 두 가지 말고도 내게 어떤 능력치들이 생겼다는 것, 회사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말할 수 없는 능력들이 생겼다는 충만함이 있다. 콕 집어 어떻게 발전했는지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제 다시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하더라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든다. 어쩌면 커리어에 해가 될지도 모르는, 회사 입장에서는 공백기라고 불리는 이 시간. 나는 이 시간을 회사 입장에서 언어로 아름답게 포장하고 해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더 많은 여유를 품고, 가사와 육아에서 자신감을 얻으며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지어 먹이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크고 작은 고민과 성취를 더 가까이 보는 것. 엘리베이터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음. 이런 내가, 나의 삶이 좋아지는 작은 순간순간들.
그러나 또한 여기에 다시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의 성취로만 나의 가치가 평가되는 것 같아 힘들던 시절의 나는 갔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영영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고, 또한 남편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다시 사회로 나갈 준비를 조금씩 해나갈 것이다. 방황하고 우울했고, 그러나 결국 행복해진 공백기 아닌 공백기 1년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내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다시 얻을 수 없었던 감사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꼭 품고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