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에서 사수가 이런 얘길 했다.
"설득하든가 수긍하든가 하나만 해!"라고.
그 말에 끄덕였음에도 진심으로 그게 맞는구나 느끼고 실천하기 시작한 건 한참 지난 후다. 보통은 설득에 실패하곤 그 불만 그대로 남기며 수긍도 하지 못한다. 거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되고. "거봐, 내가 그랬잖아. 내 이럴 줄 알았어"라며.
설득에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은 채 말해봐야 소용없는 사람으로 비난한다. 그리고 마치 구전동화처럼 내려오며 말해 본 적도 없는 사람마저 그를 "말해 봐야 소용없는 사람"이라 손가락질도 한다. 언젠가부터 누군가는 "말해봐야 소용없는 사람"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말할 때까지 해본" 사람을 별로 본 적 없다)
신입사원 입문교육 강의를 10년 가까이했다. 그때 늘 강조하던 게 저 말이다. 설득하든가 수긍하든가.
그리고 내가 일하던 방식은 의견이 다르면 누구보다 격렬히 주장하되 내 의견과 다르게 결국 결정되면 그 순간부턴 토를 달지 않는 거다. 내 원칙은 말해 볼 만큼 해봤다 할 정도로 말한다와 결정되면 그에 따른다. 그 원칙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그런데 최근 2~3년에 좀 달라졌다. 생각이 달라도 최선을 다해 설득하기보단 상대가 그러는 데엔 이유가 있겠지, 제 생각을 말해도 절충하거나 상대가 원하는 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데에 더 집중한다. 첫 스타트업에서도 예전 방식을 버리지 못했지만 스타트업에 나와 좀 달라진 모습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일이 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단 건 이전과 지금 모두 동일하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 창업가, 오너와 직접 일한다는 게 대기업과 다르고 작은 조직에서 뭐가 더 중요한가를 보면 치밀한 논의보다 빠른 실행과 개선이 더 유효하다는 걸 깨달아서다.
경력자의 자세란 내가 이미 경험한 지식과 방식을 고집하는 게 아니다. 경험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를 메꾸며 완성도를 높여 경영자가 원하는 걸 해나가게 하는 데에 있겠다. 내 한 수 가르쳐주지가 아니라 배운 걸로 최선을 다해 서포트하겠다란 마음이 중요하더라.
무엇보다 소모적 논쟁과 기싸움보단 일단 일을 하고 되게 한다에만 집중해도 일이 진척될까 말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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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너 불평, 불만 별로 안 하지?"
(전현무)"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저는 불평, 불만 없는 애로 유명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정재형)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다 잘리는 거 봐서?"
(전현무)"아니 전혀! 난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나는 형이 만약 피디야.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하잖아? '나 이거 안 해 저거 안 해'로 싸우는 시간에 빨리 끝내고 집에 가자 주의야. 할게, 뭐! 뭐?"
"이거 싸우느니, 이걸 안 해야 하는 이유와 내가 봤을 때 이거 아닌 것 같아라고 일장 연설 늘어놓을 시간에 '네가 책임져! 나 했다! 네가 원하는 이유가 있겠지.' 난 제작진을 좀 믿어주는 스타일이거든요. 시키는 건 다 해요. 빨리 가자 주의야."
"자기들도 회의를 해서 한 걸 거 아니야. '이거 하는 게 좋겠다' 그럼 나는 집단지성을 존중하는 거지. '해~ OK, 알겠어, 네가 더 맞겠지'. 그런데 하고 나서 영~ 아닌 거 같으면 얘긴 해요. 해주긴 하는데 그건 좀 재미없지 않나라고. 거절은 안 해도 걱정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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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킨다고 시키는 대로 하냐, 격렬히 반대하는 게 좋은 거다란 인식도 분명 있다. 좀 달라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결정 전엔 치열히 반대하고 일단 결정되면 충실히 이행한다가 맞다란 생각도 강합니다.
다만 창업자들을 만나며 하나 느끼는 건 미숙하고 경솔할 수는 있어도 그들 만큼 회사에 진심인 사람은 없다는 거다. 사업이 무너졌을 때 채무를 지고 갚아가는 것도 창업자다. 고연봉 인재가 아니라. 머리로 알면서도 이걸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인정까지 하는 데에 오래 걸렸던 것.
경력자로 빤히 보이는 시행착오들이 걱정과 충심을 넘어 훈계와 우월감이 되는 건 아닌지 종종 점검하곤 한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까지 모두 통제하진 못하지만.
결국 스타트업에선 CEO가, 대기업이라면 리더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전략과 실행도 무의미함을 많이 본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리더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아닐지 나 먼저 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