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mi May 11. 2021

카타르 정착기

사막의 땅, 그 첫인상에 관하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손을 씻으려니 물이 뜨겁다. 역시 오일 머니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답게 일반 화장실의 세면대 조차 온수가 나오나 싶겠지만 이곳은 원래 뜨거운 나라이다. 내리쬐는 열기에 달아오른 수도 파이프관이 수도꼭지를 통해 뜨거운 물을 뱉어내는 이곳, 기름보다 물이  귀한 사막의  중동이다.


흔히 사막하면 고운 모래가 쌓여 능선을 이루는 사구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래 사구는 이곳에서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막이라는 대부분의 땅은 끝이 보이지 않는 척박한 땅에 가깝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된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상태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이미 도시의 첫인상인 공항부터 최신 건축 기술을 잔뜩 뽐내고 있기에 본래의 자연환경을 유추하기는 더욱 힘들다. 이 도시는 차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따금씩 각종 건설 중장비들이 뿌연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갈 때면 이 곳 또한 머지않아 사회 간접 자본이 들어설 것을 예감한다. 그래도 아직 거친 허허벌판과 듬성듬성 들어선 땅딸막한 잡초들이 이전의 그 황량함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메마른 땅은 생각보다 쓸쓸하지 않다. 흔히 내륙에 고립되어 있는 모래 벌판을 사막이라 상상하겠지만 카타르는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동과 사막에 대하여 건조한 땡볕만을 상상한다면 곁에 있는 바다가 무척 서운해할 것이다.


삼면을 둘러싼 바다는 그 존재를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 엄청난 습기를 뿜어낸다. 한 여름의 날씨를 부연하는 생활 지수 중 하나인 불쾌지수는 이곳에서 계산할 의미가 없다. 기온과 습도가 모두 최고치를 달리는데 굳이 계량이 필요하겠는가. 이러한 기후 특성을 반영하듯 이곳의 대표적인 emergency 상황은 바로 에어컨 고장이다. 그야말로 비상사태.

이러한 날씨는 물리적 거리의 측정값 또한 무력화시킨다. 한 여름에 구글맵만을 보고 “20분 밖에 안 걸리네. 걸어가야지.” 했다가는 5분도 되지 않아 선택을 후회할 것이다. 따갑게 내리쬐는 볕 아래 치이는 돌 부스러기와 지나가는 차의 흙먼지에 뒤엉켜 걷자면, 오래전 실크로드를 따라 걷던 베두인 체험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것이다. 괜히 이 곳 사람들이 10분 거리여도 우버를 부르는 게 아니다.

기후 조건 외에 이 곳에서 거리의 측정값이 무용한 경우가 또 있다. 바로 교통체증이다. 카타르의 전체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기도 면적쯤 된다는데, 교통 체증이 심각한 시간에는 20분이면 가는 12km 정도의 거리를 1시간 15분씩 걸려 가기도 한다. 얼마나 걸려요?라는 물음에 ‘인샬라 (*신의 뜻대로)’ 라고 답하는 이곳의 사람들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 광경이다.

이러한 인샬라의 태도가 바탕인 삶의 터전에 대해 사막만큼이나 흔히 떠올리는 것이 바로 낙타일 것이다. 하지만 낙타는 이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당연한 존재가 아니다. 마치 소가 당당하게 차도를 활보하는 인도의 여느 도로처럼 낙타가 돌아다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동에 사는 사람이라도 낙타를 보려면 시간을 내어 외곽에 위치한 사막 같은 사막으로 가야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낙타를 끌고 다니는 현지인 또한 쉽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사막에서 낙타를 끄는 이들의 대부분은 외국인이다. 오히려 이 곳의 현지인들은 내니와 드라이버를 동반하여 고급차를 타고, 카타르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올 법한 사진 속 휘황찬란한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거주지는 공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답게 공항과 회사 건물을 중심으로 하여 방사형으로 흩어져 있다. 도하의 시티 센터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거주자들의 생활감이 물씬 느껴지는 구역이다.


인구의 90%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곳곳에 자리 잡은 각국의 전통요리 레스토랑과 해외 식료품점, 하루 5번 근처의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무슬림의 기도 소리, 건물의 처마마다 자리를 잡고 거리를 내려다보는 비둘기들, 좁은 차 사이를 가로지르며 음식을 배달하는 탈라밧의 라이더와 그런 라이더에 경고를 보내는 차량 운전자의 경적 소리 등.


사진 속 화려한 도시의 경관보다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주목하게 되는 곳. 그곳에 입지 한 수많은 건물 중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회사 숙소임을 나타내는 작은 플레이트를 달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작가의 이전글 무슬림의 기도, 그 일상적이고도 이국적인 순간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