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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 Jun 04. 2021

승무원이 빌려준 펜을 돌려받는 최고의 방법

펜을 돌려받으려다 일의 보람을 발견한 날


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제법 진지한 고민에 관한 이야기이다. 비행 중 손님에게 좋아하는 펜을 빌려드릴 때면, 꼭 돌려주었으면 한다는 당부를 나만의 방식으로 전하곤 했다.



그날의 당부는 ‘행운’이었다. 영국에서 시작하여 4일 안에 당신을 떠나야 한다는 행운의 편지를 받고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너는 행운이야! 이 펜을 쓰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만 생기거든. 너한테만 특별히 빌려줄게. 근데 그거 알아? 이 펜을 돌려주면 좋은 일이 2배로 생겨. 알겠지?”  


그저 돌려받을 가능성을 1%라도 높여보고자 머리를 굴려낸 것이었다. 물론 손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날은 비행기를 앞뒤로 휘젓고 다녀야 할 정도로 바빴다.  비행의 끝무렵이 되어서야 펜을 빌려줬단 사실이 기억났지만, 빌려간 이의 얼굴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객실로 나가서 손님들을 유심히 보아도, 익숙한 느낌의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한 번쯤 이야기 한 사람이라면 얼굴이 낯익을 법도 한데 그날따라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동료에게 펜을 빌려 비행 서류를 작성하던 차에 손님 한 명이 다가왔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펜을 빌려간 사람임을 알아차렸다. 이윽고 손님은 말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좋은 일이 4배로 생길 것 같아.

남편이랑 같이 썼거든! 사실 우리는 중요한 볼 일을 보러 가는 길이야. 근데 시작 전부터 펜이 없으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


그런데 네가 행운의 펜을 빌려주겠다고 한 순간, 우리가 펜을 두고 온 것은 더 이상 불길한 징조가 아니게 됐어. 오히려 펜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행운의 펜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네게 꼭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정말 고마워.”



이 예상치 못한 해피엔딩의 시작은 펜을 돌려받고자 행운을 조건으로 걸었던 당부였다. 그런 당부가 손님의 비행을 해피엔딩으로 바꾸어놓았음을 깨달으니, 속으로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꾀가 섞인 작은 당부를 경청하여 진정한 행운을 발견해주었다는 고마움과, 그 영감의 원천이 사실은 세련되지 못한 것이었음에 따른 미안함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따금씩 그녀를 떠올리며 행복을 빌곤 한다. 그녀는 펜을 돌려주고 항상 행복을 바라는 한 사람을 얻게 되었으니, 이는 행운의 펜임이 틀림없던 셈이다.



그리고 이 펜은 내게도 행운의 펜이었음이 분명하다.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돌려받음과 동시에, 손님의 불운을 빼앗고 행운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긴 시간을 승무원으로 살아온 이들이 말하는 보람이라면, 이 일도 참으로 오래 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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