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자아’ 지키기
채용 전문가들은 말한다. 승무원 합격자들은 평소에도 승무원 같은 모습을 하며 항상 웃고 다닌 사람들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합격의 비법이라며 언제든지 승무원스러운 모습을 하고 생활하기를 권한다. 나 또한 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누가 봐도 승무원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다소 과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당시의 모습에선 확실히 승무원이란 키워드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1. 간절기 외투는 항상 트렌치코트
2. 워킹 연습을 이유로 7센티 힐을 신고 다님
3. 웃음을 연습한답시고 시도 때도 없이 활짝 웃음
4. 건강한 내면에서 호감을 주는 인상이 발휘된다는 이유로 본인의 슬프고 힘든 감정은 외면함
그러다 어디서 승무원처럼 보인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으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아이처럼 기분이 좋았다. 올바른 방향으로 면접 준비를 하고 있다는 무언의 확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상을 파고든 이 모든 것들을 노력에 따른 자연스러운 몰입이라 여겼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말 나의 것인가요?
행여 남들의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은 아닌지요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어느 잡지의 한 구절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하였다. 언제부턴가 나의 취향보다는 승무원 준비생의 취향이 존재 깊숙이 자리 잡았음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미지를 중시하는 승무원의 특성상 외면적 요소를 중심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 너무나 뚜렷했다.
그러한 와중에 저 한 구절로 자아와 페르소나 간의 혼란이 오랜 시간 내게도 투영되어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우연한 깨우침은 그날로 승무원 준비의 방향을 다시 정립하게 했다. ‘나’의 자아와 ‘승무원 준비생’ 페르소나는 별개이며, 나의 ‘자아’가 페르소나에 휩쓸리지 않도록 단단해져야겠다고 말이다.
유니폼에서 자유로워진 일상의 승무원은 항상 친절하지도 언제나 웃고 있지도 않았다. 일상의 승무원에게는 누구도 그런 모습을 요구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이 끝나고 숙소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어떤 이들보다 표정도 없이 말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일상에서만큼은 승무원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접어두고 인간 ㅇㅇㅇ으로서 시간을 보내는 일에 몰두했다.
물론 일을 할 때는 달랐다. 승무원은 의식적으로 웃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미소가 보기 좋다며 말해주는 손님들 덕분에 스스로가 그러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 승무원의 미소는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직업의식과도 연관되어 있기에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것일 테다.
결국 승무원은 유니폼을 입으며 승무원이라는 페르소나도 함께 입어 가는 것임을, 본래의 자아와는 별개의 승무원이라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임을, 그래서 픽업을 준비하는 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돌아보건대 페르소나와 자아의 동일시에 따른 혼란은 승무원 준비생일 때 더 크게 다가왔다. 오히려 승무원으로 일할 때는 그런 혼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명확히 구분되었고, 일하지 않을 때의 시간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무원 다움’이라는 외부적 정의에 휩쓸려
자신을 바꿔가는 태도보다는, 본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유지하며 페르소나를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면접을 위한답시고 7센티 힐을 즐겨 신는 스타일로 일상의 내 모습을 바꿀 필요도 없다. 사실 승무원만큼 일하면서 신발이 많이 벗겨지는 사람들 또한 없을 것이다. 잘 벗겨져 나가는 신발만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신기에도 능해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일 뿐.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우리가 가진 또 다른 페르소나에 기대어 현재를 살아간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도 페르소나는 필요하고 취업을 위해서도, 사회생활을 위해서도 페르소나는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