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미국을 지켜본 시대의 증인들에게 그런 트럼프를 지지하는 소위 "레드 넥" 계층을 이해해 볼 수 있게 해 준 책이 있다. <힐빌리의 노래>다. J.D밴슨이라는 백인 빈곤층에서 성장한 한 남자의 회고록으로 힐빌리의 노래는 자신의 계층을 깨고 나온 후 뒤돌아본 그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쓰여진 그의 기록은 개인의 서사이면서 동시에 현대 미국의 사회적 보고서로 작동을 한다.
아마존의 베스트셀러이자 독자들의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이 작품은 어쩌면 미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내부 고발과도 같았을 것이다. 백인과 빈곤이란 단어가 나의 머릿속에도 상충되던 때가 있었다.
미국의 백인하면 떠오르는 것은 교외에 자리 잡은 근사한 정원이 있는 집에 아침이면 그 정원에서 잔디에 물을 주는 이웃과 손 인사를 나누며, 예쁘게 꾸며진 부엌에선 가족들이 둥그런 식탁에 앉아 씨리얼이니 오렌지 주스 따위를 먹으며 식사를 하고 때때로 홈파티를 열어 시끌벅적한 사교를 즐기는 사람들. 그게 내가 가진 미국의 백인들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들은 언제나 중산층이었고 때때로 그보다 넘칠 때도 모자라 보일 때도 있었지만 빈곤이란 문화를 세습하는 부류의 존재들은 아니었다.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몹시 흥미로웠다. 르포에 가까운 이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스토리로만 보자면 정말 뻔한 개천에서 자고 나란 청년의 성공 스토리로 흘러갈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그렇다고 그들에게 세습되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열악함과 그 원인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엔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이 영화가 공개되고 원작에서 보인 힐빌리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 사라진 것에 실망을 표하는 관객들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그 부분을 편집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좀 더 명료하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을 쓴 J.D밴슨이 이 책을 통해 가장 남기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태생적 불행의 근원이자 구원이기도 한 힐빌리라는 산골 마을 백인 가족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로 힐빌리의 어두운 과거와 미래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는 대신 각각의 캐릭터들에게 입체감을 실어주는 것에 집중한 이 영화는 대중들에게 책과는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단연코 배우들의 연기이다. 특히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 속 베브 역의 에이미 아담스와 할모역의 글렌 클로즈의 실존 인물들과의 싱크로율, 실존 인물보다 더 실존으로 느껴지는 연기력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두 여배우에게 포커스를 맞춘 감독의 공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불행에 잠식된 채 늘 불안한 듯한 베브의 눈빛 때문에 그녀가 자식들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짐승의 포효를 보는 듯 안타까움이 전해졌으니 에이미 아담스가 보여준 그 섬세한 표현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그리고 거칠고 씩씩하지만 넓은 포용력으로 모든 걸 내다보는 듯한 우직한 할모역의 글렌 클로즈는 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는 모두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주인공과 관객에게 가장 안정감을 준 인물로서의 신뢰감과 애정이 생기게 만든다.
엄마의 학대와 방황 , 그리고 손주를 위해 희생한 할머니 영화는 주인공을 사이에 두고 이 두 축을 대립하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주인공을 계속 앞으로 가게 만들어 준 건 할모였다. 영화를 보고 난 우리가 가장 감동받는 부분도 이 지점 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주인공 J.D밴슨 스스로도 말했듯 밴슨의 성공요인은 큐브 맞추기처럼 어느 하나가 틀어지거나 때에 맞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결과였다.
자신을 보살펴주는 존재와 때마침 이루어진 도움들이 한 번에 맞물려서 생긴 결과임을 주인공은 알고 있다. 또한 그가 자신의 가족들의 문화와 사회적 위치에 대해 이토록 신랄하게 보여준 이유도 딱히 그렇게 몰아간 사회를 탓하기 위함은 아니었던듯하다. 이 영화를 만든 론 하워드 역시 가족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족 안의 여성들이 보여주는 힘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조금 염려되는 부분들도 있다. 첫 번째는 힐빌리의 노래가 자칫 “올바른 선택과 의지, 보살핌이 있으면 우린 어떤 불행도 다 이겨낼 수 있어요” 같은 교화만을 남기게 될까 봐 이고 두 번째는 할모의 희생적인 보살핌을 기리는 것 이면에 강인한 모성애 , 가족애에 대한 우상화가 있을까 봐 서이다. 이 시대는 그러면 안된다. 희생은 미덕이 될 수 없고 우리는 좀 더 다면적으로 현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 무엇도 완전한 탓이 되거나 덕이 되지는 못한다. 똑똑한 관객이라면 분명 힐빌리를 가족애라는 납작한 서사로 읽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약물 문제를 일으킨 엄마가 갈 곳이 없어 잠시 투숙한 모텔에서 조차 밴슨 몰래 주사를 복용하려는 것을 목격하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밴슨은 엄마를 저지했고 베브는 발버둥 쳤지만 이내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사과의 손길을 내밀며 같이 있어 달라고 말한다.. J.D 밴슨은 엄마가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를 위해 머물지도 않는다. 그는 기회와 미래를 위해 나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분명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하층 백인 남성의 빈곤계층 탈출기가 아닌 더 나은 다른 삶을 제시해주는 영감으로서 발휘되었다고 생각된다. 영화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회상씬에서 보여지는 필름의 밝은 색감이었는데 그것은 아마 J.D벤슨의 유년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은 불행 속에 있었지만 어둡게만 기억되지 않았다는 것을 투영하는 것 같아 좋았다.
편집과 음악의 뛰어남은 비평가도 아닌 내가 말해봤자 의미가 없을 거 같다. 힐빌리의 노래 음악 감독은 한스 짐머이다. 그의 이름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지 않을까?
J.D 밴슨의 삶과 이 영화가 희망을 믿는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계기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 한편으로는 가난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이론으로만 받아 드리고 있지는 않는지, 당장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한국의 힐빌리들이 어딘가에 분명 있고 우리도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의식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