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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 Dec 27. 2020

<새들과 춤을 > 이토록 귀여울 수가...

댄서의 순정.

<새들과 춤을> 이란 다큐멘터리는 고양이의 세계에서 뽀로로 영상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고양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영상이란 뜻이다.  나도 종종 sns에서 집사님들의 피드를 통해 이 영상에 집중해서 티브이 화면 앞을 떠나지 않는 고양이들의 사진을 보곤 했다.  


<새들과 춤을>은 암컷과의 짝짓기를 위해 구애하는 수컷 새들의 생태계를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로 51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 속에 위트 넘치는 내레이션 , 경쾌한 효과음 , 그리고 귀엽고 웃겨서 조금 측은한 마음까지 드는 새들의 몸짓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다.
더불어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만 같은 화면 가득 펼쳐지는 뉴기니의 밀림 풍경과 새들의 고운 깃털의 결까지 포착해낸 카메라 화질이 선사하는 쨍한 영상미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깃털 흔들기의 명수, 부러진 나뭇가지에서 춤추는 폴댄서들 예술작품과 같은 둥지를 만들어 구애하는 아티스트들, 팀을 이루어 구애의 춤을 추는 환상의 팀, 그리고 완벽한 공연장, 안무 연습이 다 갖춰져 있는 위대한 쇼맨까지... 구애하는 방식에 따라 챕터를 나누어 새들에 대한 소개가 되어있다.



 
모든 수컷들이 혼신을 다해 구애하지만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선택받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안간힘을 다해 뽐낸다. 그중에서도 맥그레거 바우어라는 수컷의 능력치가 대단해 보였는데 나뭇가지를 이용해 건축물을 만드는 새로 몸집은 작지만  8미터의 건축물을 짓기도 한다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무려 7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그냥 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난 부분, 튀어나온 부분은 부리로 잘라내고 베리의 진액을 이용해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오너먼트를 달듯 자신의 건축물에 데코레이션까지 한다. 이렇게 건축물 쌓기에 혼신을 다하는 이유는 암컷이 높은 건축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한평생 좋은 집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모습과 살짝 오버랩되면서 웃프기도 했다. 새의 인생에서 7년이란 얼만큼의 세월일까 상상해보며.....

맥그레거 바우어의 능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소리를 따라 하는 능력이 있어 마을에서 듣고 온 어린아이들의 소리까지 흉내내기도 한다. 신기한 소리를 듣고 건축물로 다가온 암컷에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밀당을 위해 건축물을 뱅글뱅글 돌며 나잡아 봐라를 시전 하기도 하는데... 새가 이렇게 똑똑했나... 아니면 종족번식을 위한 욕망이 이토록 이들의 지능을 발달시킨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둥지로 암컷을 꾀어내는 새들의 구애 방법을 보면서 사실 박완서 선생님의 <그 남자네 집>이라는 작품도 생각이 났다.
작품 속에는  주인공이  어느 날 우연히 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수컷이 지어 놓은 둥지를 보고 짝짓기를 허락하는 암컷 새에 관한 장면을 보면서  첫사랑인 남자를 두고 현실에 맞는 조건의 남자를 선택해 결혼했던 본인을 비유해 "아. 나는 새대가리였구나" 하고 탄식하는 장면이 있다.
책으로 읽었을 때는  그 구절이 안타깝게 다가왔는데...

이 다큐를 보고 나니 이토록 정성 들여 구애하는 수컷을 요리조리 따지고 확인하여 짝짓기를 허락하는 암컷 새의 지능을 대가리라는 말로 폄하하기엔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에 소개된 캐롤라인 여왕 극락조의 구애는 한 편의 뮤지컬과도 같아 흥미진진했다. 이 새는 무대부터 꼼꼼히 정리하고 9단계에 걸친 안무를 쉼 없이 연습해서 암컷이 찾아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고의 무대를 보여준다. 방해하는 다른 수컷에겐 "이 구역의 주인은 나다." 하고 어디선가 나뭇잎 한 장을 입에 물고 위협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들만의 세계에선 마치 나뭇잎 한 장이 마패라도 되는 듯 다른 모든 수컷 새가 이를 수긍하고 자리를 피해 준다. 캐롤라인 여왕 극락조가 보여주는 구애의 안무는 스텝마다 규칙이 있고 리듬감이 있다. 암컷의 마음에 들 때 까지는 두 시간까지도 무대를 뛰어다니기도 한다고.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웃음이 난달까...

이 부분은 편집의 효과가 큰 것도 사실이다. 위트 있는 장면마다 보여지는 새들의 모습에서 편집의 센스가 느껴졌다. 캐롤라인 여왕 극락조가 고개를 바르르 떨며 요리조리 움직이는 모양새는 신기하기도, 조금 웃기기도 했는데 상황에 딱 맞는 배경 음악 , 천연덕스러운 내레이션이 곁들여져 이 진지한 무용수의 움직임에 눈을 한시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bbc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스러운 건조한 내레이션이 아닌 어느 로맨틱 코미디에서 "원스 어폰 어 타임"이라는 멘트를 시작으로 흘러나올 것 같은 친근한 말투와 재밌는 대사들이 이 다큐멘터리의 매력을 한껏 살려준 것도 같다.
아름답고 귀여운 수컷 새들의 구애의 몸집을 보면서 재밌고 웃긴 한편 안타까웠던 점은 저렇게 노력해도 평생 짝짓기 한 번 못해보는 새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평생 싱글로 외롭게 살아갈 그들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표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새들도 구애의 과정에서 상대방의 동의를 얻기 위해 이토록  고군분투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새만도 못한 나쁜 인간"들에게 경고문을 날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

이 재밌는 다큐멘터리의 감상을 마친다.
유쾌하고 무해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다큐멘터리 <새들과 춤을> 은 꼭 누군가와 함께 보고 웃으며 그 즐거움을 두배로 나눌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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