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파도를 맞이하며
어쩌면,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한 번 죽다 살아난 셈이라고
그러니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여태껏 살아온 방식과는 다르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누구나 서른 즈음이 되면 내면의 큰 파도를 맞이하게 되는 걸까?
적어도 나는 그랬고, 주변 몇몇 친구들이 그랬다. 그 무렵 친구들과 만나면 대화 주제는 늘 인생 이야기와 더불어 어디가 아픈지, 이번에는 또 어느 병원을 들락거려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다섯 개가 넘는 진료과를 전전했다. 한 병원의 진료가 끝나면 또 다른 문제로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고, 설령 진료를 받는다 하더라도 약을 먹을 때만 증상이 가라앉았다가 약을 끊으면 다시 올라오곤 했다.
피부는 약조차 들지 않았다. 등에 온통 원인 모를 염증이 번졌다. 의사마저 보기 좋지 않다고 할 정도였다. 병원을 옮기고 약을 바꿔가며 몇 달을 항생제를 바르고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소양증까지 찾아와 스테로이드까지 쓰게 되었다.
온몸에 연고을 바르고 알약을 꼬박꼬박 삼켜 보고 좋다는 보습제도 아침저녁으로 발라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밤만 되면 심해지는 통에 얼음팩을 올리지 않고서는 잠이 들기도 힘들었지만, 설령 겨우 잠이 들더라도 온몸을 벅벅 긁는 손이 잠결에 느껴졌다. 살갗은 너무 긁혀 따갑다가도 곧 미칠 듯이 가려웠다. 그럼 또 벅벅벅.
아무리 긁어도 사라지지 않는 가려움은 어디서 왔을까? 어디를 긁어내야 다시는 가렵지 않을까?
나으려면 간지러워도 절대 긁지 말라고 했다. 긁는 순간 뇌가 도파민에 자극받아 긁는 행위가 중독처럼 굳어지고 결국 가려움은 더 심해진다고 했다. ‘하다 하다 사람은 가려움에도 중독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참, 그야말로 성한 데 하나 없는 서른이었다.
몸만 그랬을까. 마음도 아팠다. 이 년 동안 정신과를 드나들며 치료를 받았고, 오랜 기간 함께한 연인과도 끝을 맺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도 살아온 기간이 햇수로 삼십 년인데, 고작 이거라고? 지긋지긋한 병원 투어?
만약 그간 축적된 삶의 속살이 서른을 기점으로 드러난 거라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열심히는 살았을지 몰라도, 잘 산 것은 아니었나 봐.
잘못됐다고? 그렇다면 바꿔야 한다.
나는 다행히도 끔찍했던 우울증에서 살아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바가 하나 있었다. '인생을 조금이라도 쉽게 사는 방법은, 단 일 분 일 초를 살더라도 기분 좋게 사는 것이다.'가 그것이다. 우울에 갇혀 살아본 사람이 하는 말이니 부디 믿어주시길.
그 시기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같았다. 그 길을 고개를 푹 숙인 채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매 걸음마다 ‘이 길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해 보라. 나는 다시는 그 터널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휙 스쳤다. ‘계속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반드시 재발할 것이다!’.
당시 나의 우울증은 만성적이고 고착화된 양상을 띠고 있었다. 돌연한 사건으로 인해 시작되는 우울증과는 달리 장기간 누적되어 온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인 결과로 자율신경계의 교감, 부교감 활성도가 현저히 떨어져 있었고, 스트레스에 대한 방어력과 회복력이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자율신경계 검사 결과지를 보며 의사가 뱉은 첫마디는 “너무 안 좋네? 아직 나이가 어린데...” 그리고 이 수치는 적어도 이 년 이상 매일같이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결과라 하였다. 또 다른 병원의 의사는 내 상태를 수명이 다해 더는 충전되지 않는 배터리를 달고 가는 자동차에 빗대어 설명했다. 아직 창창한 스물아홉의 아가씨가, 수명이 다한 배터리라는 말을 듣다니!
그랬기 때문에, 재발의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만성적인 경향을 띄고 있었기에 기존의 패턴-그것이 생각이든 성격이든 혹은 삶의 태도이든-을 고수한다면, 언젠가 또다시 인생의 벽에 부딪혔을 때 그 속으로 도망치려 들 것이 분명했다. 결국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일들에 대해 늘어놓진 않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얼마나 힘들었는가’가 아니라, 그 힘듦이 내게 던져준 깨달음과 그로 인해 찾아온 삶의 변화이므로.
몸과 마음이 바닥까지 떨어져 엉엉 울고 나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 여기가 바로 바닥이라는 거지?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 그저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는 것뿐이잖아?’
그렇다면 간단했다. 내려갈 곳이 없다면 올라갈 일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한 번 죽다 살아난 셈이라고.
그러니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여태껏 살아온 방식과는 다르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