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든 연애든 발 길 닿는 대로.
운전석에 타는 순간의 설렘은 좋다.
어디로 떠날까, 어떤 노래를 들으면서 갈까, 오늘은 어떤 풍경들을 지나치게 될까 등등의 질문들로 부푼 마음을 머금은 채 운전대를 잡게 된다.
나는 종종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편이다. 어딘가를 정하고 가더라도 막상 도착하고 나면, 애매하게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어딘가로 또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목적지만을 향해 떠나며 현재를 즐기지를 못하는 나의 이상한 습관 때문에,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드라이브를 즐긴다. 그렇게 하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내 하나의 행복한 여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벚꽃이 만개하기 직전의 어느 날, 우연히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서울 시내를 무작정 돌아다녔다. 그즈음엔 오랜만의 연애임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친구에게 드라이브를 제안했다. 언제나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친구 덕에 그렇게 무작정 차를 빌려 떠났다.
나를 믿어주는 덕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얼굴 마주 보고 하기엔 민망한 이야기들, 예컨대 바쁜 남자 친구에 대한 서운함 같은, 평소에는 상대방이 늘 받고 있을 스트레스를 걱정해서 쉽게 하지 않을, 단순 경청과 리액션을 바라는 그런 내용들을 털어놨다. 상대가 애정 표현을 잘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불만, 바쁜 일상으로 인해 자주 보지 못하는 서운함, 어쩔 수 없이 내가 기다려야 하는 상황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토로했고 친구는 내 말을 잠자코 다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노을을 보는 스팟에 도착했고, 우연히 엄청난 노을을 마주했다.
목적지에 대해 이것저것 재지 않고, 길이 막혀도 불평하지 않고 그저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우연히 만난 노을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내가 이 드라이브의 온전한 운전자가 되어 이런 좋은 풍경을 맞이한 거라고. 주체적인 나로서 이 길을 거쳐와서 더 값진 거라고. 그리고 조수석에 있는 친구에게 큰 걸 바라지 않고 솔직해져서 편안한 시간을 가진 거라고.
그리고 어쩌면 나는 연애에 있어 운전석에 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운전하지 못하고, 내가 타고 있는 차종이나 지나가며 마주한 매너 없는 순간들에 화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더 연애를 즐기고, 현재의 사람과 잘 만나고 싶은 욕구에 눈에 들어온 단점 들일 텐데 그 욕심들이 많은 장점을 가린 채 단점만을 부각하고 있었다.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함께 정해왔던 목적지들은 어느새 서로의 행동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어있을 뿐이었다.
부끄러웠다. 상태의 탓만 하던 나의 태도도, 이런 나의 민낯을 친구에게 내비친 순간도 남사 시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운전석을 잡았던 초심을 잃어버린 건, 바로 상대도 아닌 나였다. 드라이브를 안 하니만 못한 그런 여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빨갛게 타오르는 노을의 끝자락을 보며 생각했다. 이 또한 내가 즐겨야 하는 여정임을, 그 큰 틀에서 일희일비하지 않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이런 행복들의 잔상을 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그런 생각들이 스치는 동안 노을이 져 가고, 나는 내가 좋아하던 재즈를 틀었다. 그리고 불안정하게 보였을 나의 모습을 반성하는 듯 혹은 한 발 더 성장했음을 알려주려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게 나였어.'
앞으로도 방향이 흐려지고 사소한 것으로 인해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주체적으로 상황들을 마주하며 나 자신으로 연애에 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연인에게 내 마음을 조금 더 솔직해 내비출 수 있길 바라며.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저물어가는 봄밤에 나의 푸념을 그저 들어주기만 했던 나의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