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 수업이 끝나던 날 어떤 분이 질문을 해왔다.
"선생님, 왜 말보다 글로 상처를 더 받을까요?"
말과, 글의 차이. 글이 지닌 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나온 질문이었다.
수업시간이 끝난 터라 짧고 간단하게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말은 말 외에도 표정, 목소리, 몸짓 등 다른 친구들이 세트로 가지만, 글은 '글'만 넘어가잖아요.
글 이외에 다른 것들이 없으니, 개인마다 이해하는 대로, 인식하고 있는 대로 받아들여지겠죠.
그 과정에서 그대로 전달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르게 전달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생각이 입으로 나오면 '말'이고, 손으로 나오면 '글'이다. 말은 생각의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말 또한 글과 마찬가지로 '나'라는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다.
종종 우리는 말을 하면서 '너'가 아닌, '나'를 중심에 두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생각과 관점,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을 중심에 놓고, '너도 이렇게 이해하겠지'라고 가정하고 얘기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다 보니 그로 인해 예상치도 못한 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말하려고 한 것은 그게 아니라...'
전혀 다른 경험과 인식 과정을 지닌 타인에게 의도한 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부수적으로 필요하다. '다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 독서모임 시간에 읽은 '전락'에서 클라망스는 자신이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죽인 것도 아닌데,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자책한다. 그런 클라망스에게 누군가 이야기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괴로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클라망스는 어떤 것을 하지 않은 것,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나아가 외면했다는 것에 힘들어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괴로워하고 힘들어할 필요는 없다. 전락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될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확률적인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말이든, 행동이든, 의도와 상관없는 일이 생겨날 확률적인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오해받을 수 있고, 오해할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말을 디자인하고, 글을 디자인하고, 행동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본래 전하고자 하는 뜻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조화롭게 배치해야 한다. 수직적 구조가 아닌 수평적 구조에서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를 잘 전달하는 각도에서 디자인해야 한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도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