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엄마, 아내, 작가.
예전에는 나의 역할을 이렇게 구분했다. 그런 다음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을 취하기 위해 노력했고, 가장 잘 어울리는 태도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상황에 대한 대처는 유연했고, 중심이 되는 역할에 충실했다. 부모님을 만나면 수다스러운 딸, 누구보다 용감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시간은 나의 시간과 반대로 흐른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부터 더욱 그렇게 된 것 같다. 엄마의 시간은 복합적이다. 유연하면서 기다림에 강한, 어떤 상황에서도 호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싶지만 이게 쉽지 않았다. 어제도 상황이 비슷했다. 시험 기간이 끝난 딸이 자신의 과거를 크게 반성하며 앞으로 달라지겠다고 다짐한 것이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참을 인(忍)을 세 번 속으로 외치다가 한 마디 내보냈다가 세 마디를 되돌려 받았다. '참아?, 말아?' 깊어지는 고민에 인상이 찌그러지고 있었는데 다행히 남편이 중재에 나섰다.
"어떻게 엄마가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하니?"
"알았다고!"
제 방으로 쿵쾅거리며 걸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기억이 난다.
'부모 노릇은... 어려워...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것은... 신의 영역인지도 몰라...'
아내, 이것도 쉽지 않다. 우리 부부는 크게 싸우는 일은 없지만 워낙 다른 성격인데다가 개성이 뚜렷해 제대로 붙으면 우주전쟁급이다. 처음에는 그것을 모르고 덤볐다가 말다툼이 크게 생겨났는데, 좋게 얘기하면 지인의 말처럼 건강하게 싸우는 편이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어떤 부분이 자신을 건드렸는지를 언성이 높아지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물론 장소를 가리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던 것 같다. 우리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방에서 엄마와 아빠와 이혼을 하면 자신은 누구와 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부터는 말투나 표현에 신경을 조금 더 쓰게 된 것 같다. 승률의 문제도 아니고, 위치의 문제도 아니었다. 절박해서든, 간절해서든 서로의 영역을 확인하는 절차를 겪었고, 그러면서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 조금 더 배려가 필요하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믿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그러면서 조금씩 아내의 역할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고, 아내, 동반자, 친구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서로에게 '편'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작가. 내 영혼이 만든 '제2의 나'라고 생각한다. 활동적으로 보내는 시간에도 만날 수 있고, 주변이 모두 고요해진 시간에도 만날 수 있다. 혼자만의 만남이라 은밀하고, 농축된 모습일 때가 많다. 나의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이며, 동시에 내 인생에게 전하고 싶은 선물을 함께 만드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은 거기에 몇 가지가 더 붙었다. 글쓰기와 책 쓰기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글쓰기 강사, 좋은 저자를 찾아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출판사 대표의 역할과 글쓰기, 책 쓰기를 친절하고 따듯하게 전하고 싶다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까지, 추가된 것이 생겨나면서 마음이 조금 바빠진 게 사실이다. 눈에 드러나는 성과가 크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못 살고 있다거나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떤 날에는 사명감마저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다. 허무주의나 비관주의는 아닌데, 아쉬움이 생겨나고 속상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마르쿠스의 노력을 떠올린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으면서 발견한 문장인데, 희한하게 읽고 나면 몸 안에서 힘이 생겨나는 기분이다.
"마르쿠스는 전쟁터에서 불굴의 용기를 보여주었지만 전기 작가 프랭크 매클리의 말처럼 마르쿠스의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타고난 비관주의를 억누르려고 부단히 노력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30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