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만 퇴고하는 게 아니었다

by 윤슬작가

"제 글의 특징을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예전에 다른 사람이 내 글에 대해 어렵다는 말을 더러 했었는데, 무슨 말이었는지 이번에 알았어요!"

"강요하는 게 아니라 글에서 보여주라는 얘기잖아요?"

"퇴고가 정말 중요하네요. 처음 글을 쓸 때는 잘 몰랐는데..."


공저 쓰기 수업을 마치고 나온 얘기이다. 공저 쓰기 프로젝트, 1월에 시작하여 4월 말까지 초고를 끝내고 한참 퇴고가 진행 중이다. 보통 글쓰기라고 하면 글을 쓰는 것까지 생각하는데,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난다. 고쳐쓰기, 즉 퇴고 과정으로 본래 전하고 싶었던 진짜 모습이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초고를 쓰는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우주에 홀로 떠있는 기분은 가졌다면, 퇴고를 하는 동안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이 보다 현실적인 언어로 재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책'을 출간한다는 특별함이 선사하는 선물이자 동시에 어려운 숙제라고 할 수 있는데, 희한하게 '퇴고'를 진행하는 동안 희열을 경험한다는 사람이 제법 많다.


"책은 선물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발견하고 얻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것이 공저 쓰기 프로젝트에 숨겨진 진짜 선물이에요"


올해로 일곱 번째, 해마다 공저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수업을 시작할 때 늘 전하는 말이다. 사실 처음에는 나도 그랬었다. 책을 나온다는 사실에 집중했고, 그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몇 해를 이어오는 동안 나는 새로운 몇 가지 풍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평소 알지 못했던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아요, 누군가로부터 간간이 들었던 이야기에 관한 궁금증이 해소되었어요, 어떤 부분에 강하고 또 어떤 부분에 약점이 있는지 발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글쓰기를 두고 생각 정리의 도구, 자기 해방의 도구라고 말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것까지. 책이 출간된 마지막 풍경이 아니라 과정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나는 책 쓰기 프로젝트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떤 기준 같은 것도 생겼다. '멋있어' 보이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삶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지 글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의미 있는 행위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 특히 퇴고는 저절로 행해지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다. 어떤 결단력이 발휘된 지점이다. 내 삶의 결정에 대해 되돌아보고,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물음표를 일부러 밖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러니까 외부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사건이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욕망, 갈증, 열정에 의해서 만들어내는 사건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삶을 유지하는 동안 자신의 리듬을 확인하고, 어떤 곡조를 즐기고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템포가 빨라지는지 자신의 세계를 인식하고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그리고 그 일을 돕는 데, 쓴다는 행위보다 더 친절하고 다정한 도구가 있을까 싶다.


수업을 마칠 때쯤 적당히 몸에서 힘이 빠진, 적당히 밝아진 기분을 보는 것은 나에게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선사한다. 물론 수업 중에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고쳐 써야 하는 과제가 얼굴에 남아있지만, 뭔가 근원적인 것을 발견한 것 같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문을 나서는 뒷모습이 마음을 즐겁게 한다. 마치 글만 퇴고한 게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삶을 퇴고한 느낌을 갖게 한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공저 쓰기 프로젝트나 책 쓰기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가는 까닭이. 그 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는 것이 진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