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일곱 개의 단편을 통해 일상과 내면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진 것 같습니다. 삶의 굴곡을 따라가는 이야기로 구성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하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묻고, 대답하고, 잠시 침묵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주인공이 되어 있었습니다.
소설작품의 가장 큰 매력을 저는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라는 질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할 것인지, 다른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는 것 같거든요. 처음에는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 삶의 방식이 이해되지 않다가 나중에는 공감을 넘어 독자에게 공을 넘기는 것이 성숙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나아가 의도한 것을 넘어, 상상력을 발동하게 만들고 깊게 사색하게 만들어 내는 작품을 보면, 정말 ’글은 이런 사람이 쓰는 거야‘라는 말을 저절로 나온답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을 통해 최은영 작가가 전하고자 싶었던 메시지는 관점과 방향에 따라 다양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기억, 재생, 화해, 소통, 돌봄’이라는 키워드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다가왔습니다. 각각의 주인공들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 해결되지 않았던 감정이나 문제와 화해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선배에게든, 이모에게든, 언니에게든 내 안에 남겨진 것을 들여다보려는,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소통이라는 것도 어쩌면 ‘시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안을 들여다보려는 시도, 당신의 마음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시도가 소통의 출발점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돌봄’이라는 테마는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작품 전반에 걸쳐 미묘하게 다가온 키워드입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 화해하고,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포함해, 그 순간을 함께 보낸 시간, 사람에 대한 돌봄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과정이 마치 서로를 돌보려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가족, 친구, 선배 할 것 없이 우리가 맺고 있는, 기억 속에 살아있고, 기억을 만들어가는 이들을 돌보고 싶다는 마음, 그런 게 느껴졌습니다.
“‘더 가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 주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중략)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 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더 가보고 싶었을 뿐이었다”라는 말에서 희미한 빛, 희망을 발견합니다. 살아가는 일이 되었든, 과거와 화해하는 일이 되었든,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 되었든,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되었든 교차점에서 만나게 될 문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시에 빛이 아주 희미하더라도, 그 속에서 길을 찾고, 걸어갈 작은 힘, 용기를 얻게 되기를 상상해봅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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