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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르, 다양한 배움

by 윤슬작가

저에게 책은 ‘읽는다’라는 표현보다 ‘배운다’라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배운다’보다 ‘이해한다’가 더 어울릴 때도 있지만, 포괄적인 의미에서 봤을 때 ‘배운다’가 정확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느리게 걷는 방법도 책에서 배웠고, 판단하는 버릇을 고치는 방법도 책에서 배웠습니다. 저의 삶에 깊이를 더하는 방법이나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아마 그래서 하루에 10분만 독서를 하자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고 다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종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을 읽는 게 더 도움이 되는지 궁금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농담처럼 어떤 책이든 모두 도움이 된다고 얘기했었는데, 오늘은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책을,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나만의 기준을 마련하는 데에는 도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소설, 소설은 ‘묘사’가 탁월합니다. 등장인물들의 깊은 심리 묘사,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상황 묘사로 인해 나도 모르게 몸이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주인공 또는 조연의 마음이 되어 감정이 들쑥날쑥한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저는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쳤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저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까지. 그러니까 소설이라는 장르는 제가 인식하기도 전에 마음속 구석구석에 다양한 씨앗을 뿌려주었던 것 같습니다. 큰 나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숨긴 채 말입니다.


요즘은 좀 덜 읽는 편인데, 예전에는 시집을 즐겨 읽었습니다. 짧아서 좋았고, 강렬해서 좋았습니다. ‘하이쿠’ 같은 시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그중의 한 편을 기억합니다.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걸”. 그때의 제 마음이었고, 훗날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서정적인 시를 찾아 읽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계발서나 자서전, 누군가의 성공담을 정리한 책을 좋아해 한동안 그런 쪽만 책을 읽은 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메시지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배우기엔 한계가 있을 것 같아 하나라도 배워 나의 삶에 적용하자, 이런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수 있었고, 넘어졌을 때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판타지나 과학 소설 같은 작품은 오히려 성인이 되어서 읽었습니다. 현실적인 성격인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일상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성격이 한몫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 과학 지식이 부족하고 상상력이 모자랐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즘은 어떤 구애 없이 집어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배운다고 마음먹으니, 두려움도 사라졌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책을 읽는 동안 배움을 넘어, 감정적인 위로는 물론 제 삶에 이끌어나가는 일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합니다. ‘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장르와 상관없이, 좋아하는지와 관계없이, 앞으로 저를 찾아올 책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볼 생각입니다. 특별히 어떤 것을 얻겠다는 마음 없이, 하나라도 배움이 생겨날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입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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