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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다음에는 우리 밥 먹고 오자

by 윤슬작가

몇 주 전의 일이다.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집에 들어선 첫째가 물었다.


“엄마, 토요일에 뭐 해?”


딸이 주말 일정을 묻는 일은 흔치 않다. 사실 토요일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집안일도, 밀린 업무도, 다음 주 수업 준비도 빼곡했다. 그런데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음, 특별한 건 없는데. 왜?”


“우리, 분위기 좋은 브런치 카페 갈까?”


그 순간 머릿속에 있던 ‘할 일 목록’은 자연스럽게 흔적을 감추며 사라졌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밤에 하면 그만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말 한마디는 나에게 모든 우선순위를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특히나 딸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늦은 시각, 우리는 나란히 앉아 휴대폰을 들고 ‘분위기 좋은 브런치 카페’를 검색했다. 거리는 멀지 않으면서도 자연이 스며드는 곳을 찾느라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다 거의 동시에 같은 카페를 골랐다.

“엄마, 여기 어때?”

“엄마도 거기 좋아 보였어!”


다음 날 늦은 아침, 과일 몇 조각으로 간단히 요기한 채 우리는 카페에 도착했다. 시계는 12시를 조금 넘었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창가 쪽 자리에 앉으니 양쪽 산 능선 사이로 구름이 넓게 드리우고, 햇살은 조용히 곁을 지켰다. 우리는 말차 라테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오픈 토스트, 샌드위치,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진동벨이 울리고, 음식을 받아들었는데,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할말을 잃었다.


“엄마, 이거 너무 많은 것 같지 않아?”

나는 태연한 척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우리 아침 안 먹었잖아.”

“그리고 먹다 보면 다 먹게 되어 있어!”


하지만 자리에 앉아 몇 입을 먹으니 금세 배가 불러왔다.


포크를 내려놓으며 딸이 말했다.

“엄마, 다음에는 우리 밥 먹고 오자.”

“그래, 그래. 다음엔 비빔밥이나 국수라도 먹고 오자.”


웃기다면 웃긴, 슬프다면 조금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웃음은, 대화의 물꼬가 되었다. 시험 이야기, 친구 이야기, 도서전 이야기, 서포터즈 활동, 연예계 소식,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동생 이야기까지, 대화는 장르도 주제도 없이 흘렀지만,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서사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딸의 표정은 점점 밝아졌고, 평온한 기운이 주변을 머물며 온기를 지켜주었다.


늦은 오후, 창 너머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으면서 다리 아래 구름이 저만치 달아날 즈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까지도 남아 있던 도톰한 토스트, 그 자태를 바라보며 딸이 말했다.


“진짜 배고플 땐 뭘 사거나 시키면 안 된다니까.”

“맞아. 맞아.”

“다음엔 진짜 밥 먹고 오자.”

“그래, 우리 꼭 그렇게 하자.”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때로는 완벽한 계획보다, 어설픈 상황이 더 풍성한 기억을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 라고. 그 덕분에 가끔 ‘배보다 배꼽이 큰’ 순간들이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건 아닐까. 다음번에는 밥을 먹고 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게 괜찮고, 또 괜찮을 것 같았다. 브런치 카페, 어쩌면 그곳은 ‘배’보다 ‘마음’이 더 든든해지는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윤슬작가


#윤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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