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을 앞둔 책을 다듬는 일은 언제나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내년 초에 선보일 책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가을로 넘어가는 시점까지도 나는 전혀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올해 초부터 마음에 품어온 기획이었고, 출간 시점까지 세심하게 조율해 둔 상태였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그 계획을 무기한 연기해야 했고,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부터 마음 한가운데 공백 같은 시간이 생겨났다.
방법을 찾던 중 오래전부터 써오던 원고 하나가 떠올랐다. 시기적으로도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파일을 열었다. 완성된 글도 있었고, 번쩍 스친 감정이나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적어둔 짧은 문장들도 있었다. 언젠가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모아두었던 기록이었다. 나는 그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고, 조용히 결심했다.
“이 책을 출간해야겠다.”
그때부터 마음은 이전보다 더 분주해졌다. 초고를 마무리해 퇴고에 들어가려면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초고를 완성하고, 요즘은 본격적인 퇴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퇴고는 이미 태어난 문장에서 또 다른 문장을 발견해야 하는 과정이다. 생명을 가진 문장들 사이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비워낼지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문장을 다듬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다시 정리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퇴고가 어려운 이유는 ‘고치는 일’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퇴고는 끊임없이 나에게 묻는다.
“이 문장으로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 글에서 내가 건네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통과하지 못한 문장은 삭제되거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어떤 부분은 더 솔직해져야 하고, 어떤 문장은 내가 감추고 싶어 하던 마음을 더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초고 쓰기가 마음을 여는 일이라면, 퇴고는 그 마음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래서 초고보다 퇴고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이번 퇴고를 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글은 예쁘게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진심이 더 멀리 가고, 진정성이 더 깊이 닿는다는 것을.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온전한 공감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완벽함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사실 어느 지점이 완벽함인지 판단할 재간도 없다. 그저 스스로에게 묻는다.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일에 소홀함이 없는지를 묻고 또 물을 뿐이다. 퇴고는 결국,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는지 묻는 과정이다. 그 질문에 담담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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