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일기는 기록일까요, 글쓰기일까요?”
‘기록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소개한 후,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기록과 글쓰기의 차이에 대해, 그리고 하루의 일을 적는 것이 글쓰기인지, 기록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고민을 들고 한참을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이 질문을 받고, 잠시 노트북을 두드리던 손을 내려놓고 식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기록과 글쓰기. 지금은 글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저의 출발점은 ‘기록’이었습니다. 일과 중에 있었던 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적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마치 바위에 흔적을 남기듯, 생각과 감정을 붙잡아 글로 옮겼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눈앞에 재현하려는 사람처럼, 그렇게 시작된 저의 기록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과 사소한 조각들을 중심으로 일기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제 삶에 동행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기록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특별한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빛깔의 모습이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흔적을 남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왜’라는 질문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이런 감정을 느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다음에는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는지. 더 유의미한 것은 질문이 생겨나면서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오히려 감정 속으로 깊숙이 발을 들이미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기록하는 사람’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 변화한 것 같습니다. 사건이나 상황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 싶어했거든요.
저에게는 기록을 하는 공간이 따로 있고, 글을 쓰는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지금처럼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은 글쓰기에 해당합니다. 생각, 감정, 행동, 경험에서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보편적인 의미와 가치를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를 위한,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공간에는 ‘기록’을 합니다. 오직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만의’ 솔직한 기록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기록과 글쓰기 모두 ‘돌봄’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를 들어 일기장에 “오늘은 회사에서 진짜 속상했어.”라고 적었다면 그것은 기록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런데 속상하지만, 감정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잘 참아냈어. 나는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믿으니까.”라고 덧붙였다면, 이것은 글쓰기가 됩니다. 기록도 좋고, 글쓰기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챙기고 보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 한 줄이라도 그렇게 쓰고 나면 마음이 조금 더 밝아질 거라고 믿거든요.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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