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기록 스튜디오 ‘담다 글방’을 열었다.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을 크게 알리지는 않았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조용히 바꾸고, 인스타그램에 짧은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대외활동을 통해 새롭게 연결된 몇몇 분들에게만 간단한 메시지를 전했다. 일부러 널리 알리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지내는 사람들만큼이나, 앞으로 새롭게 만나게 될 사람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담다 글방’이 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채워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다.
오픈 소식을 앞두고, 문자와 메시지가 여러 통 도착했다.
대부분 따뜻한 축하 인사였다.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덧붙였다.
“그런데 작가님… 새로운 출발이 맞는 건가요?”
처음에는 살짝 웃음이 났다.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몇 번 이사했고, 여러 사람과 팀을 이루었다가 또 새로운 팀을 꾸리기도 했다. 공간도, 관계도, 일의 형태도 약간씩 변주를 거치며 여기까지 흘러왔다. 그러니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저 질문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선택이 완전히 새로운 시작인지, 아니면 이전의 시간이 이어진 연장선인지, 안부에 가까웠다.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기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답을 전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이 되었을 때 나는 발견했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무엇을 시작하고 있는 걸까.
예전의 나는 시작도, 마무리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늘 마음에 걸렸고, 주변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일을 시작하는 일도, 어떤 것을 정리하는 일도, 관계 속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일도 오래 고민해야 했다.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내가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은 아닐까. 어떤 판단을 잘못 내린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그렇기에 “새로운 출발인가, 아니면 연장선인가”와 같은 질문은 예전의 나라면 쉽게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딘가 더 멋진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대답을 미루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답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선택한 삶을 내가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어떤 결정을 앞두면 가장 먼저 나에게 질문한다.
지금 나는 이 선택을 스스로 환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더 덧붙인다.
이 선택을 내 인생에 대한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쩌면 잘하려고 애썼던 시간도, 망설이며 돌아섰던 순간도, 무언가를 시작하고 또 정리했던 장면도.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은 결국 내 삶을 아끼고 지켜내려는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떤 선택은 시작이 되고, 어떤 선택은 마무리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선택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고, 어떤 선택은 예상보다 빨리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알게 된다. 그 모든 선택이 실은 자기 삶을 향해 기울어 있던 마음의 방향이었다는 것을..
이 순간, ‘담다 글방’ 앞에 서서 생각한다. 이곳이 완전히 새로운 시작인지, 아니면 이전의 시간에서 이어지는 흐름인지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둘 사이 어디쯤에 있어도 괜찮고, 둘 다 이어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삶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으며. 내 인생에 대한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지나온 시절 동안 제가 선택한 것들이 기억났고, 환대하며 마중 나가지 못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용기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불같이 화를 내던 자잘한 순간이 기억났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제 인생에 대한 헌신이라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_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중에서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