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 하난데 하고 싶은 건 여럿
10년 동안 한 회사를 다녔다.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라는 굵직한 인생의 주제들을 지나 마침내 10년을 채우자 35일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이 굵은 휴가를 뭘로 보내야 후회가 없을까?!
맨 처음, 다수의 워킹맘이 그러하듯이 나의 하루를 직장인과 엄마로 쪼개어 아이에게 내어줄 필요 없이, 오롯이 '엄마'로 있을 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초등학교의 겨울방학은 참 길다던데, 아이의 겨울방학에 맞춰 휴가를 내야겠다 싶었고, 한 달짜리 해외 영어캠프는 어떨까 싶어 틈날 때마다 검색을 했다.
캠프는 말레이시아가 좋겠다며 계획을 구체화하려던 중 갑자기 유럽병이 찾아왔다. 이국적인 유럽의 거리, 테라스 카페, 야경 같은 것들. 겨울에 가도 많이 춥지 않다는 지중해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이를 데리고 겨울의 유럽을 여행한다는 건 쉽지 않을 일이라 점점 혼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몄다. 결혼 전의 나는 ‘혼자 놀기’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포스팅을 했을 만큼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했었다. 혼자인 시간을 통해 충전하는 성향. 여행을 검색하고 상상하며 그 시절이 그리워졌고 그리움은 금세 갈망이 되었다.
그러던 중, 나PD의 예능, 지구오락실의 우붓 에피소드가 방영됐는데, 퍼뜩 떠올랐다.
'아, 맞아. 나 우붓에서 요가하고 건강한 음식 먹으며 살고 싶었지!'
코로나 이전, 요가에 빠진 친구가 풀어놓았던 우붓 요가라이프를 보며 한 달 정도만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했었다. 물론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더 이상적으로 여겨지던 그림.
유럽에서 차 마시고 ‘구경’하고 맛있는 거 먹는 여행은 나이를 더 먹고도 무리가 없겠지만, 이건 나중에 체력과 나이의 한계에 부딪힐 수 있으니 우선순위를 두자면 요가라이프지!
다만 과거의 내가 혼자 여행을 가는데 필요했던 건 회사의 휴가결제뿐이었지만, 지금은 허락 혹은 배려받아야 할 대상이 많다. 나의 부재동안 '엄마'의 빈자리를 매워줘야 할 남편과 친정엄마, 그리고 최종결제권자인 아이.
남편의 협조는 나름 수월했다. 혼자 유럽 가고 싶다던 내가 행선지를 발리로 급선회했더니 반대하던 남편이 수긍했다. 유럽여행 위험하다고 반대의견 내놓을 때 그건 혼자 육아하기 싫은 자의 핑계라며 욱했었는데 발리라면 괜찮다고 나오니 핑계라 생각했던 게 미안해졌다.
엄마는 ‘네가 옛날 생각만 하고 쉽게 보는데 괜찮겠냐’고 걱정의 말을 삼키지 않았지만 역시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문제는... 아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아이에 대한 나의 걱정과 죄책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