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잘 지내? 작년에도 대충 이렇게 시작하는 생일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니. 우리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고 연락은 뜸하지만 종종 책상 위, 네가 준 향수를 보면서 너를 떠올려. 사는 건 조금 덜 숨 가쁜지, 예전보다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운지, 나아가는 방향은 잘 가늠이 되는지, 그런 것들 말이야. 나는 여전히 나에게 지나치게 너그럽고 또 동시에 가혹하기도 해. 사는 건 똑같이 재미가 없지만 그래도 책이랑 유튜브는 재밌더라.
예전엔 말이야 그래도 고등학생, 대학생 때의 기억이 오랫동안 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많은 기억들이 그 위로 덮어졌어. 우리도 어느덧 나이를 먹었구나 싶어. 아래 남겨진 기억과 위로 덧대어진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선물을 고르는 게 쉽지가 않았어. 너는 무얼 좋아하는지, 요즘엔 어떤 삶의 방식을 따라 흐르는지, 선물로는 뭘 받고 싶은지 아니면 어떤 게 필요한지 그런 것들 이제는 하나도 모르는 친구가 되어 버렸으니까. 꽤 오랫동안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노력했어. 그때 네가 뭘 좋아했더라, 어떤 걸 가지고 다녔더라, 좋아하는 색이랑 좋아하는 영화, 음악은 어떤 게 있었지, 하면서.
내가 기억하는 한 너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어. 언뜻언뜻 들여다볼 때마다 한 칸씩 어느 방향으로든 이동해 있었지. 내게는 참 어렵기만 한 일들을 너는 뚝딱뚝딱해내는 사람이었고. 종종 위태로워 보였지만 또 금방 적응한 듯 아무렇지 않아 보였어. 너에게는 사람들을 대하는 일정한 온도가 있었는데 그게 차지도 뜨겁지도 않아서 좋았어. 나는 언제나 스스로가 너무 차갑거나 너무 뜨겁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늘 비슷한 온도를 유지하는 네가 신기하고 부러웠어. 물론 너의 몸과 마음 안에 일던 여러 고통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네가 그 모든 걸 이겨낼 힘이 있다는 건 알았지.
네가 삶을 어려워하던 시기가 기억이 나. 그때는 나도 비슷했지. 지금도 그렇게 삶을 사랑하는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태 포기하지 않고 살아있어. 나는 네가 살아있어서 기뻐. 그리고 잘 살아있다면... 더 좋겠어.
너와 함께 갔던 제주도 사진을 찬찬히 둘러보곤 해. 지금도 젊지만 그때는 어렸었더라고. 그래,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우리가 다시 같이 바다를 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 언젠가 같이 바다를 보겠지, 같이 또 한 방에서 잠에 드는 여행을 할 수 있겠지.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우리 삶은 어느 방향으로든 뻗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우리 서로 잘 살아있자는 마음이야.
2009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생일을 축하해 줄 수 있어서 기뻤고, 기뻐. 생일 축하해! 또 다른 일 년을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그 속에는 또 다양한 일들이 있었겠지. 언제나 너에게 고운 날들이 더 자주 찾아오기를 멀리서도 늘 바랄게. 건강하게 지내, 나중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