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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Jun 04. 2022

사랑할 만한 너에 대하여

2022년 4월

"이유 없어. 그냥 너라서 사랑하는 거야."


이런 드라마 대사가 나오더라. 이 말이 좀 의아해. 이유없이 뭘 좋아해본 적 있나? 다 이유가 있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왜 사랑하는지 내 안에 것들과 엮을 수 있는데 왜 이유가 없지.


이럴 때 난 참 사랑할만 했던 너를 떠올려.

지금까지도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내 곁에 있어주잖아.


좀 옛날 얘길해볼까. 넌 니가 태초부터 얼마나 대단한 앤지 모르는 것 같아. 단군신화급이야. 넌 내가 너를 얼마나 추앙하는지 알 필요가 있어. (추앙이라는 단어 요즘 드라마에 나오더라)


넌 언어능력이 뛰어났고, 난 수학을 잘했지. 실은 너 보면서 수학머리가 없어서 3등급은 받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어. 기어코 꾸준히 노력하더니 1등급을 받아냈지. 그 과정을 4년 동안 지켜보면서 니가 너무 존경스러웠어. 학원도 다니지 않고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Ebs의 승리였을까. 아니 너라서 가능했어. 너때매 어영부영 묻어가려고 하는 내가 진짜 쪽팔렸어. 날 쪽팔리게 해서 니가 더 좋았어. 그러고보면 날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아.


연대갈 성적이 됐는데 수시납치당했잖아. 초반에 잡음을 이겨내고, 적응하려고 애쓰는 니가 존경스러웠어. 대학 어쩌고를 한탄하는 애들이 한방에 시시해졌어. 그리고 자연친화적인 우리학교를 정말 사랑하게 됐지. 니가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학교를 좋아할 일은 없었을 거야.


좋아하는 수업을 들으려고 애쓰면서 각자를 벼려갔지. 이런 걸 쓸모없는 낭만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았는데, 우리 사이에서 그게 중요했고 그 사치가 좋았어.


가끔 학벌주의 타파를 외치면서도 은근히 자기 대학 스티커를 노트북에 붙이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참 짜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복잡하거든? 다른 의미로 날 부끄럽게 해서 조금 멀어지고 싶어지지.


나한테 대학은 너랑 함께한 시간, 우리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던 기억, 피톤치드라서.. 그런 종류의 스티커가 내 스키마에 다다다닥 붙어있어서 쉬워져. 고마워. 한국사회에서 학벌주의를 뛰어넘는 그 어떤 것을 니가 만들어낸다. 니가 그런 애야.



사람들은 니가 좀 눈치없고, 만만하고, 헤벌레한 애라고 여겼잖아. 내눈엔 세상에서 니가 제일 대단하고, 커보였어.


아직도 기억나. 다른 애들은 니가 노란색을 좋아하거나 인형을 좋아하면 놀리는데, 난 멋지다고 해줘서 니가 날 좋아했다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어.


애들이 그런 널 못 알아보는 게 내 눈엔 너무 이상했지. 애들이 눈이 삐었나? 아니면 니 재능과 반짝임을 질투하는 건가? 싶기도 했어. 니가 주인공인 걸 금방 알아봤지.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야. 에일리언도 무찌를 수 있는 힘을 가졌는데 자기는 모르는 그런 만화적 설정. 그런 니 옆에서 기꺼이 친구1이나 조력자를 맡고 싶었어. 내내 착 붙어있었으니까 절반은 성공이야. 만화가 끝나기 전까지 함께 해야 완전 성공이야.


또 어떤 점을 사랑했냐면 자기 절제력. 통화하다가도 할 일이 있으면 곧바로 전화를 끊었잖아. 처음에 그게 참 황당스러웠는데 나중엔 너무 편했어. 니가 언제고 자기 욕구를 나한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서 기뻤어. 나도 널 그렇게 대할 수 있었고, 니 덕에 많이 배웠지. 친절한데 단호박이야. 우리 둘다.


아 편지, 너에게 수 십통의 편지를 받았어. 내 기쁨과 슬픔을 당연하게 여기는 법 없이 정성스레 따뜻한 글로 날 돌봐줬어. 주고 받은 수많은 편지덕에 이렇게 세련되게 안부를 묻고 있지. 키키. 개이득이다.


우리 표현방식이 별나서 전교생이 다 알았는데, 블로그 게시판에 편지라니 더 진화했다!




누가 나한테 사랑하는 마음이 뭐냐고 물어보면

동래역에서 명륜역으로 가는 길이라고 답할 거야. 야자 10시에 마쳤고, 11시까지 보충공부를 했지. 그땐 명륜역으로 가는 길이 너무 어두웠어. 가로등이 없었으니까.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다 보였어. 바바리맨 같은 것들이 나오기 딱 좋았어.

우리집은 명륜이랑 반대방향이었는데 같이 걷는 시간이 좋고 니가 무서워할까봐 명륜역까지 걸었어. 그때 우리끼리 반 애들 욕도 하고, 선생님 성대모사도 했지. 주제 넘게 어울리지 말아야할 친구도 타일렀어. 앞으로 꿈에 대해서도 그렸어. 넌 좋아하는 시인에 대해 말했고, 스티브잡스 전기를 읽고 있었고, 중앙일보 낱말 맞추기를 좋아했어.


살아보니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은 참 드물더라. 다른 사람과 걷는 길은 가방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어. 걷자는 사람들보면... 굳이 문명의 이기를 왜 거스르려는 걸까 의아했어.



우리가 밀착돼있을 때 니 눈빛만 봐도 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장난을 치고 싶은지를 알았는데.

솔직히 지금은 눈빛으로 알진 못하는 것 같아.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1번으로 요청할 수 있다는 건 예전보다 잘 알아. 잘 들어줄 수 있다는 것도.


요즘 뭐가 니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하니,

대신 아파해주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사람은 누구니,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내게도 대신 아파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

예나 지금이나 너만큼  살점을 떼어주고 싶은 사람은 너밖에 없어. 니가 걱정돼.   걱정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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