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2-07-01
공부하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진짜 힘든 건 아니고 그냥 투정부려봤다. 진짜 힘든 건 못 한다. 엄마는 그렇게 힘들면 관두고 다른 거 하라고 했다. 감냥을 알라고. 너 그렇게 대단한 애 아닐 수 있다. 니가 예전에 어떤 성과를 이뤘든 그거 다 0이다. 여기서 증명못하면 다 꽝이다. 너 공주님 아니다. 다 잘못되면 니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라. 뭐 이런말을 했다. 엄마의 우려였고, 자기 자신에게 하는 살풀이었다. 그런 엄마를 이해한다.
엄마나 아빠를 실망시킨 적 없다. 애초에 나한테 그렇게 기대가 크지 않았다. 재능이 있다고 기대받는 쪽은 언제나 오빠였다. 내가 수학보다 체육을 좋아하고, 오빠보다 역사를 모르고 책을 안 읽어서 그렇게 굳어졌다. 그게 성차별적인 시선과 맞붙었다. 세희는 문과에 가서 어문학과를 나와서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갔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었다. 이중적인 바람. 그러면서도 내가 적당한 직업을 구해서 이혼할 수 있을 때 언제고 탈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갈 때도 오빠는 가능하면 특목고나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애썼다. 난 간당간당했는데 그냥 일반고에 가서 내신 쉽게 따라고 했다. 특목고 대비반 이런 건 다녀본 적 없다. 담임쌤도 엄마도 둘다 그랬다. 내가 다른 애들보다 독한 면도 없고,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적당히 잘 살 수 있게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가라고 했다.
대학에 갈 때도 그랬다. 오빠는 유명하다는 학원에 다녔고, 국어를 잘하니까 논술도 했다. 그 당시에 부산에서 논술을 준비하는 애들은 몇 없었다. 반면에 나는 그런 기대는 받아보지 못했다. 끈기도 없었다. 학원도 아니다 싶으면 금방 그만뒀다. 나중엔 미남로타리에 있는 학원을 전부다 다녀봐서 갈 필요가 없었다. 고1 때 나 자신에게 이렇게 되내었다. 넌 국립대는 근처도 못 갈거고, 사람들이 무시하는 대학에 갈 거야. 만약 좋은 학교에 간다면 그건 순전히 다 운이야.
전교 1등을 하고 나서도 문과라서 가능했다고 했다. 니가 이과에 갔으면 전교 1등은커녕 반에서 1등도 못했을 거라고. 대학 입시 때도 오빠는 니가 그 전형으로 그 대학에 합격하면 자기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 나는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다들 아니라고 하니까 뭐 어쩌겠나. 운좋게 붙었다. 최초합이었고, 나중에 들어와보니 내 전형에 최초합은 나밖에 없었다. 다들 기뻐했고, 운이 좋다고 했다. 장은 안 지졌다.
언시를 허무하게 끝냈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 속 깊이 들어가서 이 공부에 왜 이렇게까지 집착했나. 그렇게 체질도 아니면서. 재능이 뛰었났던 것도 아니면서. 사랑했던 것도 아니면서. 그냥 나를 너무 증명해내고 싶었다. 내가 제일 무시받은 부분을 내 스스로가 채워주고 싶었다. 그럼 텅빈 어디가 채워질 것 같았다. 아빠나 오빠가 뉴스를 볼 때마다 세희는 저것도 모르지. 정말 무식하다. 이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속으로 저런 거 아는 게 얼마나 대단하면, 저걸 다 이해해버릴 거라고 다짐했다. 뉴스를 이해하고 보수 진보의 관점, 관련 서적 까지 읊을 수 있는 날이 왔다. 남자 어른들이 하는 말이 겨우 김어준이나 유시민이 라디오에서 뱉은 몇 마디라는 걸 알았다. 그때 아빠는 자기가 어릴 적부터 날 무시해준 덕에 내가 신방과에 가고, 똑똑해진 거라 말했다.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 능력보다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삶이 누려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가고, 오답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최은영의 <밝은밤> p,156
어제 저녁 침대에서 많이 울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증명해야해. 내가 쌓은 탑은 왜 자꾸 모래성처럼 흩어져. 왜 난 오빠처럼 근거없이 자기를 믿지 못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 같은 건 왜 내 인생에 없어. 왜 오빠 삶은 귀납이고 내 삶은 연역이야.
수영장에서 턴을 배웠다. 내 표정에 두려움이 가득해서 선생님이 따로 날 불렀다. 세희씨 무섭죠? 여기서 천천히 10바퀴만 돌아보라고 하나씩 알려줬다. 무섭냐고, 그래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해보라고 했다. 겁나는 부분에 대해 다정하게 알려주는 게 낯설었다.
어제도 턴 배우는 것처럼 지금 단계가 겁난다고 말해본 것뿐이었다. 공부하면서 힘들다 소리를 해본 적이 없다. 힘들다고하면 감냥이 안된다는 소릴 들을 게 뻔하니까. 그럼 나는 흥분해서 활시위를 가장 팽팽하게 당길 게 뻔하니까. 증명해내려고 밝은 밤을 보낼테니까.
일어나자마자 엄마는 의도와 다르게 말이 나갔다고 사과했다. 엄마처럼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엄마는 그 방법을 모르니까 엄마 반례를 읊어댄 거였을 거다. 진심으로 엄마가 느슨하고 편안하고 행복해지면 좋겠다.
오전에 수영하고, 낮잠자고, 오후에 6시간 알바하고, 저녁에 책 읽고 글쓰면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엄마 생각처럼 내가 공주님이라 허영심에 쩔어서 자의식과잉으로 이 시험 준비하는 거 아니라고. 사회학 시간에 본 논문중에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고 나서 무섭다고. 좀 덜 무섭고 싶어서, 지속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거라고. 이제껏도 잘했으니까 공부로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하는 거라고 했다. 내 깜냥 테스트라고. 조금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나도 모든 걸 리셋하고 하는 이 일이 그렇게 엄청 즐겁지 않은데, 싫지도 않다고. 내가 싫지 않은 건 별로 없다고.
선명해지고 마음이 편해졌다. 모래성쌓기 같은 증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험을 시작할 때 오빠는 7급은 어렵고 내가 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몇 번 깨지다보면 눈을 낮추겠지. 뭐 이런 얘기. 내 주제를 모른다는 말을 들을 거다.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그 말 이 맴돌 거다. 어젯밤엔 제발 날 알아달라고 밥도 안 먹고 폰도 없애고 공부하고 싶었다. 지난 수십년간 내가 이 문제를 풀었던 방법처럼.
수영 끝날 때즘 손을 떼고 턴을 돌 수 있었다. 진짜 허영인지는 3번 쳐보고 결정할 거다. 수영다니면서. 그리고 안되면 과외하면서 돈 벌고 나머지 시간은 좋아하는 취미로 채울 거다. 여러 사람을 관찰하고 싶다. 그 삶도 기대된다. 비슷한 성적 집단 중 한 그룹에 공부를 잘한다고 말하면 성적이 오르는 실험이 있다. 그걸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조각상이 사람이 되길 바랐는데 진짜 사람이 된 일화에서 유래됐다. 피그말리온 효과 내 인생에 없었다. 그랬다면 달라졌을까. 궁금하긴 하다. 그래서 여자 애들을 장점을 끄집어내고 칭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조각처럼 딱딱해진 마음에 이제서 남들이 칭찬을 해준다한들 거짓말처럼 들렸다. 나를 너무 좋게만 보면 불안해졌다. 아니라고 현상을 정확히 보라고 하고 싶었다. 여자가 누릴 수 있는 피그말리온은 사회가 앗아갔다. 나한테 피그말리온 효과를 걸지 뭐. 내 인생엔 더 마음 편한 일만 있을 거라고.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