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기장같은 리더를 만날 수 있을까.

진정한 '큰어른' 품격에 대해

by 번애프터리딩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 일까요.

'보수'란 단어는 이제 부패, 꼼수, 꼰대의 다른 말이 되었습니다. '보수를 지지한다'고 밝히는 순간 비웃음을 사는 현실입니다.

저 역시 보수정당을 취재한다고 말하는 순간 세간의 이목이 이상스레 집중(?)되고 주위에서 피식피식 웃는 경험을 다수한 바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좀 갸우뚱합니다. 보수가 참 나쁜 것은 아닌데 말이죠. 우리 사회가 일궈 놓은 소중한 가치를 '지킨다'는 측면에서 어찌보면 참 멋진 이념입니다.


문제는 지금 한국 정치상황에서 보수의 가치를 담아낼 그릇이 없다는 것이겠죠. 보수란 노선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보수정당'이 실패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현실을 접어두고 '보수'하면 떠오르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려 봅니다. 안정감? 믿음? 책임감? 이런 것이 아닐까요. 무엇보다 후배들을 위해 희생을 자처하는 '큰어른'의 품격이 떠오릅니다.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바로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입니다. 거장 클린트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인데요.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입니다. 비록 인종차별 발언같은 극우적인 발언으로 비난받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그가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담아냈습니다.

설리 기장은 맡은 바 책임을 묵묵히 다하면서도 생색내지 않습니다. 153명의 승객을 구출한 뒤에도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성숙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제게는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스웩'으로 느껴졌습니다. 설리같은 지도자라면 마음 속에서 자연스런 존경이 우러러 나올 것 같습니다.


반면 한국의 보수 지도자는 반대로 나아가는 듯 했습니다. 당시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제가 생각하는 '큰어른'의 행보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보수정당 입장에서 '아랫목'으로 불리는 대구-경북 지역의 당협위원장까지 맡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양 측을 비교하며 진정한 보수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기사를 쓴 시점부터 8개월이 지났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홍 대표는 대표직을 물러났습니다만, 여전히 큰어른다운 보수 리더는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영화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



==========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그려낸 작품으로 자주 언급된다. 2009년 탑승객 155명 전원이 생존한 미국 비행기 추락사고를 다룬 영화는 설리 기장의 시각으로 사고 당일을 촘촘히 그려나간다. 그는 오랜 경험과 책임감 등을 바탕으로 승객을 무사히 구조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대중과 언론을 향해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답하며 잔잔한 감동을 줬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최근 행보를 보며 이 영화가 떠올랐다. 그는 최근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 공모 서류를 접수했다. 홍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마지막 정치인생을 대구에서 마감하고 싶다”고 호기롭게 적었다. 물론 홍 대표 역시 평당원 입장에서 당협위원장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여론은 정반대다. 6·13 지방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둔 가운데 격전지에 뛰어들어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려 하기보다 ‘아랫목에서 따뜻한 여생을 보내려고 한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당을 위한 희생보다 보신에 치우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홍 대표는 TK지역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표면적으로 들었다. 전날 페이스북에 “TK를 안정시키고 동남풍을 몰고 북상하여 지방선거를 꼭 이기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TK는 한국당에 가장 관대한 지역으로 꼽힌다. 여론조사를 봐도 그렇다. 한국갤럽이 1월 1주차 집계한 정당지지율에 따르면 TK지역 한국당 지지율은 22%다. 전국 8개 지역 중 가장 높은 수치로 전국 평균(10%)을 훨씬 웃돈다. 탄핵 여파에도 TK유권자 절반 이상이 지난 대선에서 홍 대표에게 지지를 보냈다.


오히려 안정이 필요한 지역은 TK를 제외한 모든 곳이다. 특히 수도권은 심각한 상태다. 서울·경기·인천 지역 지지율은 1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사실 한국당은 탄핵 사태이후 지지율을 끌어올릴 ‘모멘텀’을 한 번도 잡지 못했다.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기 혁신위원회를 띄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켰지만 별다른 임팩트가 없었다. 이를 두고 ‘구체제와의 단절’이라고 선언했으나 대중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이 와중에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선점하려는 지도부의 모습은 ‘역시나’라는 반응을 자아낸다.


한국당 내부서도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지도부의 희생을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는 쓴소리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김태흠 최고위원은 “당 대표라면 험지를 택해 희생과 헌신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텃밭 대구에 ‘셀프 입성’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산시장 출마를 선언한 박민식 전 의원도 페이스북에 “보수주의자가 아닌 보신주의자”라고 비꼬았다.


극 중에서 설리 기장은 모든 승객을 항공기에서 피신시킨 뒤 자신은 맨 마지막으로 탈출한다. 차디찬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비행기 문을 닫으며 사고를 무사히 수습한다.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장면 중 하나다. 본인의 안위보다 공동체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큰 어른’의 모습이 겹쳤다. 우리는 언제쯤 설리 기장같은 보수 지도자를 볼 수 있을까.



(2018년 1월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