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노회찬 '속보 한 줄'로 담을 수없는 존엄성

by 번애프터리딩

모두가 충격에 빠진 한 주 였습니다.


23일 오전 그가 투신했다는 속보가 뜨자마자 정치부 기자들 대다수는 '에이 설마...'라며 못 믿는 분위기였습니다. 저 역시 눈을 비볐습니다. 정말, 거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타계하기 불과 닷새 전 노 의원을 인천공항에서 마주쳤습니다.

여야 4당 원내대표가 함께 방미일정을 시작하기 직전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실시한 기자회견장에서 말입니다. 며칠 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던 현직 정치인의 극단적인 선택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최고의 파급력을 자랑하는 시사 프로 '썰전'의 현직 패널이었습니다. 이처럼 브라운관과 여의도를 넘나들며 종횡무진하던 인사입니다.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습니다만, 늘 유쾌한 얼굴로 미디어에 출연하면서도 내면에선 괴로운 갈등을 반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의 작별을 슬퍼할 여력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의도에선 당장 그의 부재가 여의도 국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여부에 주목했습니다. 그가 속한 교섭단체가 비(非) 교섭단체로 밀려나며 국회는 기존 4당 체제에서 3당 체제로 재편됐습니다. 각 당의 이해 관계 역시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그의 부재가 어떤 '나비효과'로 작용할 지 전망하는 기사를, 고백컨데 저도 썼습니다.



기사를 쓰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그저 정치적 '변수'로만 다루는 현실이 너무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만명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이 아닌, 한 사람이 죽은 2만명이 있었다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던 기타도 다케시 감독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극단적 선택은 '사건'이 아니라 개인의 존엄성의 측면에서도 다뤄져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글은 제 긴 변명으로 들릴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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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노회찬 의원의 빈소를 찾은 시민들




“이 지진을 2만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이 죽은 2만명이 있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후쿠시마 지진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숫자로서의 죽음이 아닌 희생자 한 사람의 존엄에 주목해야 한다는 겁니다. 날마다 끔찍한 사건·사고가 쏟아지는 가운데 타인의 비극에 무뎌진 현대인의 무관심한 태도에 서늘한 일침을 가한 것입니다.


최근 생긴 한 정치인의 비극과 함께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여의도는 한 주 내내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갑작스런 타계로 술렁였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현직의원의 극단적인 선택에 언론은 관련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 개인의 정치인생, 빈소를 찾은 여야 정치인의 반응 등 비극 자체에 주목한 보도입니다. 그러나 그의 부재가 여의도 정치판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 전망하는 기사도 상당했습니다. 비극 자체보다 정치적 ‘트리거’로 바라본 셈이죠. 전자가 현미경을 통해 비극을 들여다 봤다면, 후자는 망원경으로 멀리 응시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의 부재에 따른 정치적 여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그가 속했던 교섭단체(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가 비(非) 교섭단체로 밀려났습니다. 국회는 기존 4당 체제에서 3당 체제로 돌아왔습니다. 평화와 정의가 범 여권으로 분류되는 만큼 민주당 입장에선 ‘우군’을 상실, 20대 후반기 국회에서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됩니다. 필자를 포함해 상당수의 언론이 비슷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정치적 사건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그는 정치인이기 전에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선배 혹은 후배, 또 누군가의 아들이었습니다. 속보 한 줄로만 담기엔 너무도 부족한, 한 사람과의 애통하고 황망한 작별입니다.


게다가 그는 진보진영의 보기드문 대중 정치인이었습니다.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정의당을 이 자리까지 성장시킨 장본인이기도 하고요. 그와의 갑작스런 작별을 두고 ‘진보진영의 큰 별이 졌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기타노 다케시의 말처럼 단순한 숫자로서의 개인이 아닌 ‘한 사람’의 존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만난 한 보좌진은 “(노 의원 관련)속보가 뜨자마자 모 기업의 대관 담당자로부터 메세지가 왔다”며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이 교섭단체서 밀려났으니 무슨 여파가 있겠냐고 바로 물어보더라. 사실 소름이 먼저 끼쳤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직 우리에겐 ‘한 사람’의 부재를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ttps://news.v.daum.net/v/20180729100618928


(2018년 7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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