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징비록'을 읽고.. 전쟁 뒷치닥거리에 대하여
400년 전 쓰인 '징비록'은 최근에도 미디어 언급이 꾸준하다. 특히 정치분야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른바 '유력인사'들과 인터뷰 말미에 추천도서로 등장하는 편이다. 나 역시 그 정도 인지도만 가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훌륭한 르포르타주로서 징비록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지표였던 셈이다.
책을 쓴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조정을 책임진 고위 공무원이다.
전란 당시 '도체찰사'라는 직책을 맡아 나라의 살림을 도맡았다. 오늘날로 따지면 국무총리에 해당한달까. 누구를 등용하고, 어떤 전략을 펴고, 동요하는 민심은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등 사실상 전란에 무너진 조정을 이끌었다.
'고전은 어렵다'는 거부감만 넘어선다면, 정말 재밌다. 낯선 직책과 이름 등을 적당히 스킵하고 사건의 흐름만 집중해도 흥미진진한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인류사 보편적으로 통하는 이야기 소재 중 하나가 누군가 혹은 집단의 '몰락' 아니던가. 이렇게 뒤통수맞고, 저렇게 쥐어터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헐" "대박" "다음에 어떻게 되는거야" 라는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다만 종국에 남는 건 씁쓸함이다. 사건 자체에 몰입하다가도 모든 비극이 이 땅에서 이뤄진 실화라는 점을 자각하는 순간, 뒤늦은 회한이 밀려온다.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는 격언이 증명하듯, 임진왜란은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영웅을 배출했다.숱한 책 영화 드라마 등이 그의 용맹함과 전술을 다루며 국민영웅의 반열에 올려놨다. 류성룡 역시 충무공의 공을 치하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일부 시기하는 시선을 차치하더라도 자타공인 최고의 장수라는 점에 대해서는 당대의 평가도 대부분 일치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총칼을 들고 싸울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 번의 전투를 위해 오만가지 잡일이 필요하다. 적당한 사람을 모으고, 또 모은 사람에게 밥을 주고, 쌀이 모자라면 다른 지방에 공문을 보내어 식량을 보충하고, 보충하는 과정에서 왜병의 침략이라도 받지 않도록 돌봐야한다. 임금의 도주로 기강이 무너진 나라에서 겨우 질서를 다잡고, 백성을 다독이는 일도 주요 업무다. 이를 책임진 자가 바로 류성룡이다. 특유의 꼼꼼함과 청렴한 성품으로 이 오만가지 잡일을 도맡았다.
누군가는 해야하지만, 결코 빛이 나기 힘든 일을 도맡아 했던 류성룡.
임진왜란 최전선에서 싸우는 무신들 못지않은 애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