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앞에서 조용히 열리는 마음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선택은 내가 해야 했다.
조언해 주는 사람도,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끔 헷갈린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괜찮은 건지.
누군가 옆에서 그냥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두 사람과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내가 준비한 사진들 사이에서
자기 마음을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볍게 보여주려던 사진들이
그들에게 감정의 문처럼 작용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장면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그저 이미지지만,
그 앞에 선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몰랐던 감정을 말하게 된다.
이 글은 내가 들은 이야기이자,
그들의 사진이었고,
그리고 어쩌면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나는 테이블 위에 사진을 펼쳐두었다.
직접 찍은 사진들 중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터치할 수 있는 장면들로 고른 50여 장.
오늘은 성격을 알 수 있는 심리검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어쩐지 검사부터 진행한다는 것이
이 두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사진부터 꺼냈다.
사진이 감정의 문이 되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맞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사진을 고르기 시작했다.
한 명은 감정에 충실했고,
조금은 적극적인 성향으로 보였다.
사진을 먼저 고르고, 그에 대해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른 건 안개 낀 숲길 사진이었다.
안개가 감돌지만 가을 숲의 붉은 잎이 선명한 컬러 사진.
"몽환적이에요. 뭔가 있을 것 같고,
그 길을 걷고 싶어요. 두렵지 않아요.
늘 보던 숲길 같아서."
그녀의 말에서 어떠한 감정이 느껴졌다.
사진은 그녀의 내면을 가볍게 두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말도, 마음도 먼저 움직였다.
다른 한 사람은 신중한 편이다.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조심스럽게 탐색하던 사람.
사진도 천천히 고르고,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비행기 창밖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구름 위로 날개가 보이는, 익숙한 풍경.
"비행기 타면 늘 이런 사진을 찍어요.
여행을 좋아해요."
그녀의 말은 짧고 담백했다.
하지만 그 짧은 말속에
감정이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주 조용하게 정리된 감정이 느껴졌다.
그녀는 또 다른 사진도 골랐다.
눈이 쌓인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멀리 작은 시골 마을이 보이는 장면.
“이런 풍경을 보면 설레요.
상고대가 예쁘고, 조용하고,
혼자 있어도 좋을 것 같고…
여럿이 함께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녀는 빛보다, 나무보다,
그 너머의 ‘고요한 감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
사진을 고르는 방식과 태도
그 사진 속에서 말하는 감정도 모두 달랐다.
한 사람은 숲을 본다.
걷고 싶고, 뭔가 있을 것 같고,
익숙해서 두렵지 않다.
다른 한 사람은 눈 쌓인 고요한 마을을 본다.
혼자여도 좋고, 조용한 분위기가 좋다.
햇빛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눈에 들어왔다.
같은 사진을 두고도
그 안에 담기는 감정은 전혀 다르다.
이 사진은 평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쓸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그리움,
누군가는 자유,
누군가는 억압을 떠올린다.
사진은 말이 없지만,
그 앞에 선 사람은
자기 안의 감정을 꺼내기 시작한다.
상담자로서 나는,
그 조용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들이 사진을 고르고 말하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조용히 듣는다.
때로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이야기하는 사진이 있다.
그리고
그 사진 앞에 서는 사람이,
자신도 몰랐던 감정을 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바로,
사진이 감정의 문이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