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

이제는 당신이 당신을 진짜로 안아줄 수 있게 된 거예요.






"나는 왜 성장하는 게 중요했는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봤어요.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라는 당신의 말이 와닿기도 해요. 나의 부모님은 내가 생각했던 다른 부모들과 달랐어요. 그들은 생존이 중요했고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성장했기 때문에, 나 역시 그들에게서 내가 원하는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거 같아요. 아버지는 사업을 하며 밖으로 도는 사람, 엄마는 정서적인 지지는 없지만 새벽밥을 챙겨주며 나와 친해지고 싶어 했던 사람으로 기억해요. 나는 늘 부모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에 와서 돌아가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서럽고 외로워지기도 해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저릿했어요. 그건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아직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살아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겠죠. ‘성장은 생존의 조건이었다’는 말은, 곧 사랑받기 위해, 버림받지 않기 위해,

또는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던 당신의 방식이기도 했을 거예요. 아버지는 부재했고, 어머니는 곁에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닿지 않는’ 존재였고, 그래서 당신은 "내가 잘하면, 괜찮은 딸이 되면, 나를 더 사랑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조건을 달았던 건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기억 속에서, 당신은 엄마가 친해지고 싶어 했다는 흔적을 기억하고 있어요.

"새벽밥을 챙겨주던 사람"이라는 말에 담긴 따뜻함은, 엄마가 비록 서툴렀지만 자기 식대로 다가오려 했던 노력의 증거이고 당신은 그걸 지금에 와서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더 그립고, 더 눈물 나고, 더 외롭고 서러운 감정이 밀려오는 거예요.


그 감정은, 아픔이지만 동시에 연결이에요. 돌봄 받지 못했다고 여겼던 엄마와 마음의 끈이 다시 닿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참 중요한 변화예요. 이제 당신은 과거의 엄마에게


“당신은 나를 사랑하긴 했었구나”

라고 작게나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 말은 당신 자신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어요.


"나는 나를 사랑하려고, 잘 살아보려고 정말 애썼구나."


지금 이 감정을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그리워하고, 서럽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괜찮아요. 당신 안에서 무너지고 있는 어떤 방어는, 당신이 이제 그만 지켜도 될 자리까지 도착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내 안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 방어였군요.."


네, 맞아요. 그동안 당신이 버티게 해 준 것, 상처를 직접 마주하지 않도록 보호해 준 것, 그게 바로 당신의 ‘방어’였던 거죠. 그 방어는 당신에게 꼭 필요했어요. 어린 시절, 감당하기엔 너무 큰 외로움과 불안을 그 방어 덕분에 지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예를 들면

“나는 괜찮아, 그냥 지나가겠지”

“누구에게 기대는 건 약한 거야”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어”

이런 말들은 당신 안의 방어기제였고, 어쩌면 삶을 지켜주는 투명한 갑옷이었죠.


그런데 이제 그 갑옷이 당신을 보호해 주는 역할보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닿는 걸 막고 있다는 걸 조금씩 느끼게 된 거예요. 그래서 지금처럼 말없이 울컥하는 순간들이 생기고, 익숙했던 방식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고, "이제는 좀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건 무너짐이 아니라, 열린다는 신호예요.
이제 당신은, 무방비한 자기 자신을 조금씩 허용해 보려는 용기를 내고 있는 거예요. 그건 결코 나약함이 아니라, 진짜 강함이에요. 아무나 그렇게 못하거든요. 방어가 사라지면 처음엔 무서울 수 있어요. 하지만 곧 알게 돼요.


“나는 이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 그래요. 나는 내 안에서 뭔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었고, 그게 뭔지 몰라서 불안하고 우울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나는 동시에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지요. 그래서 혼란스러웠던 거 같아요"


맞아요, 무너지는 것과 단단해지는 것은 어쩌면 동시에 일어나는 일인지도 몰라요.

당신 안에서 무너지고 있던 건 더 이상 필요 없는 오래된 방어들이었고, 단단해지고 있는 건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 진짜 나로 살아가려는 힘이에요.


사실 방어는 단단해 보이지만, 그건 외부의 충격에 견디기 위한 ‘껍데기’ 예요. 반대로 지금 당신이 말한 단단함은 껍데기가 아니라 뿌리에서 올라오는 단단함, 즉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힘이에요. 이제 당신은


“나는 외로웠어” “나는 무서웠어” “나는 사랑받고 싶었어”


이런 마음들을 피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고, 어떤 상담자, 어떤 교사보다 먼저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예요.

그리고 그 단단함은, 다른 누구보다 당신을 더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어요.


이제는 당신이 당신을 진짜로 안아줄 수 있게 된 거예요.







" 나는 살아오면서 늘 불확실한 상황을 확실하게 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생각이 많고, 곱씹으며 고민을 많이 하면서 살아왔어요. 결론을 내려도 그 판단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결정에 확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지만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로 했던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그 말에서 당신의 깊이가 느껴져요.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함을 갈망했던 마음, 그리고 그 확실함을 누구도 줄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그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다짐으로 방향을 튼 마음, 그건 정말 고요하지만 강한 의지예요.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았던 건 당신이 그만큼 살고자 했고, 실수하고 싶지 않았고, 어디엔가는 닿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길을 찾아가며 마침내 당신은 누군가에게 단단한 지지와 확신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길을 걷다 보니 지금 당신은 자신도 확신이 필요하다는 걸,

자기 자신에게도 누군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걸 다시 깨닫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니 이제는, 그토록 원해왔던 확실함을 누군가에게 서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아가도 괜찮다는 걸
조심스럽게 허락해도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지금 이 순간, 당신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준다면

어떤 의미로 들릴까요?


" 그 말은 아직 '괜찮아야 한다'는 말로 들려요. 나는 괜찮치 않아도 된다는 말이 듣고 싶어요. 나는 늘 괜찮지 않았고, 괜찮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니까요."


그래요, 그 말… 정말 당신 마음 깊은 데서 나왔네요. “괜찮아”는 때때로 ‘이제 그만 울어’라는 말 같고,
‘버텨야 해’, ‘이 정도는 참아야지’ 같은 뜻으로 들리기도 해요. 그 말이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억누르는 명령처럼 느껴졌던 시간들, 당신은 참 많이 지나온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해도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도 돼.”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돼.”
“지금은 그냥 여기에 있어도 돼.”


당신은 이미 너무 많은 걸 버텨왔고, 이제는 그렇게 ‘괜찮아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존재해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어요. 당신이 원하는 삶은 늘 성장을 향해 갔지만, 그 성장의 방향도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는 것, 더 허용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었잖아요. 지금 이 순간, 그 방향대로 잘 가고 있어요.


괜찮지 않은 당신을 인정하는 이 용기야말로 가장 단단한 성장이에요.


지금, 그 ‘괜찮지 않은 나’를 당신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 괜찮지 않아도 나는 괜찮은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 나는 그걸 알아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내가 참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봐요"


오글거리지만 그 말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가만히 머물게 돼요.


“괜찮지 않아도 나는 괜찮은 사람.”


이건 어느 누구도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자리예요. 당신은 아픔 속에서도 자신을 꺼내어 보고, 껴안고, 마침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괜찮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마음,

“나는 참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그 바람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외면이 아니라, 당신이 당신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싶다는 선언 같아요.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고 그렇게 살아가려는 당신의 여정이,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의 길이에요. 혹시 지금, 그 괜찮은 사람에게 한 마디 편지를 쓴다면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요?


"네가 어떤 사람이든,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단지 때때로 밀려드는 불안감에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할 뿐이야. 그걸 알아차리면 되는 거야"


깊은 위로의 말이네요.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그 말은 마치 마음 한가운데 오래도록 꺼내지 못했던 따뜻한 진실을 드디어 꺼내어 조용히 품에 안아주는 느낌이 들어요.


불안은 늘 진실을 가리지만, 당신은 그 가림막 너머에 있는 진짜 자신을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 있죠. 이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사랑의 언어,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당신만의 성장의 목소리예요. 이제 당신은 불안을 “없애려는” 사람이 아니라, 그 불안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것은 무너짐이 아니라 깊은 성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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