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보고 싶었던 그곳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제주를 잘 모른다.
딱 두 번 가봤다.
주변에서 아무리 제주도가 좋다고 한 달 살이를 해도
내겐 그저 흔한 섬 중의 하나 일 뿐이었다.
몇 년 전
조용하고 잔잔한 드라마 한 편이 제주도를 꼭 가보고 싶을 만큼 마음을 사로잡은 적이 있다.
한적한 제주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언제라도 찾아가고 싶은 그런 곳에서
마치 누군가 나를 기다려줄 것 만 같은, 그런 장소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있었다.
이미 관광객들로 북적였으리라 짐작하고 찾아갔는데....
너무 낯선 이들로 북적여서 민원이 들어왔던 걸까? 그 집은 틀만 남고 다 철수한 상태였다.
나는 집터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느꼈던 드라마에서의 그 감동을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꼭꼭 포장해 놓았던 나의 기대화 감동을 펼쳐 볼 기회도 없이
그냥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졌고
남은 것은 시멘트 벽과 액자처럼 뚫린 창틀이 전부였다.
같은 공간에 돌벽과 시멘트 벽이 공존하는 것을 보며
아마도 나처럼 분위기에 약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연출을 통해
최대의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주려고 했나 싶었다.
드라마가 종영된 후라서,
관광객들의 수선스러움에 주민들이 견디기 힘들어서,
다른 용도로 쓰임을 바꾸려는 과정 중에 있어서.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기대를 저버린 이 상황에 대한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아직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잖아!"
라고 '툭' 던져본다.
어찌 됐든 제주를 알리는 것에 일등 공신이었던 그 드라마는
아직도 그 장소와 함께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아주 작은 소품 샵에서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대형견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아마도 주인은 아닌 듯 한 사람과 산책 중인 것 같았다.
그곳이 이곳과 걸어올 수 있는 만큼 가까운 곳인지도 몰랐는데,
오래 살면 지름길을 아는 법이니까.
그저 작은 소품 샵에서 눈을 한 번 마주쳤을 뿐이었는데 내가 기대했던 장소에서
이름도 모를 대형견을 다시 만나다니,
인연인 건가? 무척 반가웠다.
제주는 이제 하와이처럼 남의 땅 같은 느낌이다.
미국은 일본인들에게 하와이를,
우리는 중국에게 제주도를.
다 넘겨주고 있으면서도
그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텐데.
모호한 것들에 홀리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텐데...
속았다고 의심하면서도 그 속임수에 길들여지고
결국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가스라이팅처럼
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점검해 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