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97편 - 취향을 바꾸는 사유

소비하는 자에서 선택하는 자로

by 사유의 무지랭이

* 취향을 바꾸는 사유

<소비하는 자에서 선택하는 자로>


[취향은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취향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광고,

유행,

진열,

추천 알고리즘.


이것들은 끊임없이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설계한다.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준비된 목록 안에서

고르고 있을 때가 많다.


[취향의 본질]


취향은

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사유의 문제다.


무엇이 아름다운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가를 묻는 것.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취향은 선명해진다.


취향이 없는 사람은

선택하지 않는다.

주어진 것을 고를 뿐이다.


취향이 있는 사람은

거절한다.


거절은 사유에서 나온다.

사유 없는 거절은

고집이고

사유 있는 거절은

취향이다.


취향은

사유가 삶의 표면으로 올라온 것이다.


어떤 음악을 듣는가.

어떤 공간에 머무는가.

어떤 물건을 곁에 두는가.


그 선택들이 모여

존재의 결이 된다.


[소비하는 인간 — 호모 콘수무스]


소비하는 인간은

자극에 반응한다.


새로운 것,

유행하는 것,

많이 팔리는 것.


이 기준들은

판단을 대신해 준다.


그래서 소비는 쉽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내면이 비어있을수록

소비는 빨라진다.


채워지지 않는 것을

물건으로 채우려 한다.


그러나 채움은 오지 않는다.

다음 소비가 기다릴 뿐이다.


폴락이 캔버스에 물감을 쏟아부었듯

소비하는 인간은

공허함을 물건으로 쏟아붓는다.


그러나 폴락의 캔버스에는 결이 남았고

소비의 자리에는

청구서만 남는다.


[선택하는 인간 - 호모 셀렉티쿠스(Homo Selecticus)]


* 호모 셀렉티쿠스(Homo Selecticus)

<정보와 상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최선의 것을 골라내야 하는 선택하는 인간>


사유는 이 흐름을 멈춘다.


왜 이것을 원하는가.

왜 이것이 좋은가.

왜 이것을 가져야 하는가.


이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소비는 느려지고

선택이 시작된다.


선택은 취향을 드러낸다.

취향은 기준을 만든다.


취향이 깊어질수록

소유는 줄어든다.


가진 것이 적어도

선택한 것만 남는 삶.


그것이 취향이 만드는 사유다.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와

호모 셀렉티쿠스(Homo Selecticus)]


소비하는 인간은 반응한다.

선택하는 인간은 멈춰 선다.


호모 콘수무스는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

유행이 부르면 원하게 되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면 의식 없이 선택한다.


판단은 외부에 있고

기준은 타인에게 있고

취향은 설계된 구조에 맡겨버린다.


내면이 공허할 수 록 선택은 더욱 빨라진다.


선택은 채워지지 않으며

다음 소비가 기다리는 일종의 의식(Ritual)이 된다.


호모 셀렉티쿠스는

자극에 사유로 대답한다.


왜 원하는가.

왜 필요한가.

왜 지금인가.


판단은 내부 깊은 곳에 있고

기준은 사유에서 나오므로

선택에는 느리게 시간에 반응한다.


선택을 늦출수록 사유는

소유는 줄어들게 만든다.


여기에 소비하는 존재의 결이 만들어진다.


호모 콘수무스의 자리에는

공허한 청구서만 남고


호모 셀렉티쿠스의 자리에는

사유의 흔적이 만들어진다.


[인생에 필요한 평형수]


배가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평형수(Ballast)를 채워야 한다. 선박의 균형을 잡고 안전한 운항을 위해 선체 내부탱크에 채우거나 배출하는 바닷물이다.


배가 바다 위에서 제대로 항해하게 힘을 세우는 무게다.


인생이라는 배에는

걱정, 불안, 우울도 평형수에 함께 담겨 있다.


걱정을 덜고, 불안을 없애고, 우울을 지워내고


그것들을 모두 비워낸 배는 파도 한 번에 뒤집혀 버린다.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무게 없이 떠다니는 것 자체다.


필요한 삶을 위해서는

더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무게를 얼마나 채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걱정, 불안, 우울을 내려놓은 편안한 상태는

인생이 전복되는 순간도 맞이할 수 있다.


걱정, 불안, 우울도 전복되지 않는 인생을 위해

채워야 하는 인생의 협약일 것이다.


* 슈만

<어린이 정경 중 '꿈(Träumerei)’>


들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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