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가 아니라 도 깊게 가져가는 사유
* 소비문화를 흔드는 사유
<더 많이가 아니라 더 깊게 가져가는 사유>
[풍요의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우리는 오랫동안
많이 가지는 것을 풍요라고 배웠다.
더 많은 물건
더 많은 선택
더 많은 편의
그것이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공식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많이 가질수록
삶이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흐려지기 때문이다.
[많음이 만드는 판단의 흐림]
물건이 늘어나면
선택은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약해진다.
무엇을 써야 할지
무엇을 남겨야 할지
판단하는 힘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사면서도
더 만족하지 못한다.
[소비는 욕망을 해결하지 않는다]
소비는 욕망을 해결하지 않는다.
그저 욕망의 방향을 잠시 가릴 뿐이다.
새로운 것을 들이면
잠깐은 채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같은 자리가 비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구매한다.
그리고 다시 비워진다.
[결핍을 분산시키는 구조]
이 반복은
결핍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많이 가지는 것은
결핍을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핍을 분산시키는 방식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가지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가지느냐다.
[적게 가진다는 것의 의미]
적게 가지는 것은 부족함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남길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이다.
하나를 고르고
그것을 오래 사용하는 사람은
소비를 줄인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세운 사람이다.
[깊게 가진다는 것]
깊게 가진다는 것은
하나를 이해하고
그것을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다.
오래 쓴 물건은 가격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물건은 시간을 통과하며
선택을 증명한다.
쉽게 바꾸지 않고
쉽게 버리지 않는 태도.
그 안에서
사람은 자신의 기준을 만든다.
[단표누황 — 조선이 가르친 기준]
논어 옹야편에 이런 말이 있다.
대나무 밥그릇 하나,
표주박 물 하나,
누추한 골목.
안회는 그 안에서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공자는 그것을 칭찬했다.
가난을 칭찬한 것이 아니었다.
그 가난 속에서
기준을 잃지 않은 것을 칭찬한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단표누황을 이상으로 삼은 이유는
결핍을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무엇을 남길지 아는 사람이
무엇도 잃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의 기준을 바꾸는 일]
결국 소비를 바꾼다는 것은
물건의 개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소비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많음은 편의를 준다.
그러나 깊음은 방향을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물건의 수가 아니라
그 물건을 선택한 이유만 남는다.
[사유문명론 — 소유와 사용의 경계]
사람은 물건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준을 잃는 순간
물건이 사람을 사게 된다.
처음의 구매는 필요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곧 비교가 들어오고,
비교는 관심을 만들고,
관심은 축적을 낳는다.
그 순간
물건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보관이 되고,
집착이 되며,
결국 주객이 역전된다.
하나면 충분했던 것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마침내 이유 없이 늘어난다.
그래서 사유는 다른 선택을 한다.
없으면 안 되는 것만,
최소한으로,
중복 없이.
문제가 없다면 바꾸지 않고,
익숙함을 유지하며,
선택을 제한한다.
이때 물건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용되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
소유는 줄어들고,
사용은 또렷해지며,
사람은 중심을 되찾는다.
결국 남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다.
* 에드바르 그리그
<홀베르그의 시대로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