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서는 방식
* 인간의 중심을 회복하는 사유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서는 방식>
[기준이 무너진 시대]
기준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넘쳐서 무너졌다.
누구나 말하고
누구나 판단하며
누구나 기준을 만든다.
아무도 기준이 되지 못한다.
과거에는
기준이 밖에 있었다.
권위가 방향이었고
질서가 판단이었으며
제도가 위치를 정해주었다.
지금은 다르다.
권위는 해체되었고
질서는 선택이 되었으며
기준은 개인에게 넘어왔다.
[인간 중심의 붕괴]
기준이 개인에게 넘어온 순간
인간은 중심을 얻은 것이 아니라
중심을 잃었다.
밖이 무너지자
안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더 많은 정보를 찾고
더 많은 기준을 빌리며
더 많은 비교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빌린 기준은
결정을 만들지 못한다.
결정을 미루게 만들 뿐이다.
흔들림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정교해진다.
[다시 서는 방식]
중심은 밖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안에서 세워진다.
기준은 찾는 것이 아니라
정하는 것이다.
그 기준은
생각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같은 선택을 반복하고
같은 방향을 유지할 때
기준은 비로소 몸에 남는다.
중심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의 축적이다.
[사유의 역할과 인간의 회복]
사유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흩어진 판단을 모으고
흔들리는 방향을 붙잡는다.
사유는 인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서게 만든다.
중심을 가진 인간은
더 많이 아는 존재가 아니라
덜 흔들리는 존재다.
외부가 바뀌어도
자신의 방향이 유지되는 상태
그 상태에서
비로소 선택은 시작된다.
[아날로그 - 끊기지 않는 결의 문명]
사유는 속도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사유는 끊기지 않는 흐름에서 자란다.
디지털은 세상을 쪼갠다.
0과 1로 나누고
선택과 판단으로 나눈다.
그 결과 인간은 계속해서 결정해야 한다.
고른다,
바꾼다,
비교한다,
다시 고른다.
이 반복은 사유를 만들지 않는다.
피로를 만든다.
아날로그는 다르다.
아날로그는 나누지 않는다.
이어진다.
주파수를 맞추면 끝이다.
그 이후는 흐름이 이어진다.
선택은 사라지고,
시간만 남는다.
사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선택이 멈춘 자리,
끊김이 없는 자리.
그곳에서 인간은
무언가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저 머문다.
아날로그는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은 기능의 부족이 아니라
개입의 부재다.
개입이 없을수록
사유는 깊어진다.
아날로그는 과거가 아니다.
사라지는 기술도 아니다.
오히려 남는 구조다.
이어지는 것은 쌓인다.
아날로그란
기술의 방식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끊지 않는 것,
나누지 않는 것,
흐름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사유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 Kevin Morby
<Die Young>
신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