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자유가 아나라, 책임의 예고다
* 선택은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예고다
[선택의 순간이 가볍게 느껴지는 착각]
선택의 순간이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그 선택이 자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순간에는 아직
아무것도 갚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선택은 대개 짧다.
눈앞의 가능성 중 하나를 고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짧은 감각을 자유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자유의 증거가 아니라
아직 대가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신호에 가깝다.
선택은 즉시 무게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두고
삶의 방식 속으로 스며든다.
[선택은 결과보다 먼저 태도를 바꾼다.]
선택은 삶의 결과를
곧바로 바꾸지 않는다.
대신 태도를 바꾼다.
무엇을 당연하게 여길 것인지,
어디까지를 자기 몫으로 감당할 것인지,
어디서부터는
다른 이유를 불러오며 물러설 것인지.
이 태도의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삶은
그 태도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반복 속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굳어진다.
[책임은 선택 이후가 아니라, 선택과 함께 시작된다.]
책임은
선택이 끝난 뒤에
선택이 유지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과정이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차이처럼 보인다.
조금의 무리,
조금의 편의,
조금의 미루기.
그러나 이 작은 선택들이
반복될 때
삶은 서서히 기울어진다.
그 기울어짐이 바로
책임의 실체다.
책임은
한 번에 덮쳐오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자라난다.
[무엇을 감당하지 않기로 했는지가 삶의 윤곽을 만든다]
사람은
무엇을 가졌는지로 드러나지 않는다.
무엇을 끝내 감당하지 않기로 했는지에서
더 선명해진다.
지금의 만족을 위해
나중의 무게를 앞당겨 쓰는 선택이 있고,
지금의 불편을 감수하며
선을 긋는 선택이 있다.
이 차이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능력의 문제도 아니다.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 가의 문제다.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삶은
항상 현재를 빌려 쓴다.
아직 자기 것이 아닌 시간을
먼저 사용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외상으로 사는 태도는 삶을 점점 얇게 만든다.]
삶을 외상으로 산다는 것은
아직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미리 누리겠다는 태도다.
처음에는
풍요로워 보인다.
부족함이 가려지고,
결핍이 잠시 잊힌다.
그러나 이 방식은
지속되지 않는다.
자기 몫이 아닌 것을
계속 끌어다 쓰는 삶은
반드시 균형을 잃는다.
그때 책임은
벌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결과처럼 도착한다.
[선택의 결과는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선택의 결과는
설명으로 가려질 수는 있다.
상황을 말할 수 있고,
환경을 이유로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은
그 모든 말을 지나
하나의 질문만 남긴다.
이 선택을
누가 끝까지 살아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책임은
반드시 자기 몫으로 돌아온다.
넘길 수 없고,
대신 짊어질 수도 없다.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 지속의 문제다.]
자유는
선택의 순간에 있지 않다.
그 선택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다.
설명 없이도 견딜 수 있는 선택,
미루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선택,
남의 몫을 끌어오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선택.
그 선택만이
자유에 가깝다.
[사유는 여기서 다시 속도를 늦춘다.]
이 지점에서
사유는 다시 한번 속도를 늦춘다.
선택과 책임 사이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하나의 장치를 보기 위해서다.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설명은
정말 사유를 돕고 있는가.
이어 <사유문명론 23편 - 사유는 선택 이전이 아니라, 선택 이후에 시작된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