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22편 - 선택은 책임의 예고다.

선택은 자유가 아나라, 책임의 예고다

by 사유의 무지랭이

* 선택은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예고다


[선택의 순간이 가볍게 느껴지는 착각]


선택의 순간이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그 선택이 자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순간에는 아직

아무것도 갚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선택은 대개 짧다.

눈앞의 가능성 중 하나를 고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짧은 감각을 자유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자유의 증거가 아니라

아직 대가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신호에 가깝다.

선택은 즉시 무게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두고

삶의 방식 속으로 스며든다.


[선택은 결과보다 먼저 태도를 바꾼다.]


선택은 삶의 결과를

곧바로 바꾸지 않는다.

대신 태도를 바꾼다.


무엇을 당연하게 여길 것인지,

어디까지를 자기 몫으로 감당할 것인지,

어디서부터는

다른 이유를 불러오며 물러설 것인지.


이 태도의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삶은

그 태도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반복 속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굳어진다.


[책임은 선택 이후가 아니라, 선택과 함께 시작된다.]


책임은

선택이 끝난 뒤에

선택이 유지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과정이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차이처럼 보인다.

조금의 무리,

조금의 편의,

조금의 미루기.


그러나 이 작은 선택들이

반복될 때

삶은 서서히 기울어진다.

그 기울어짐이 바로

책임의 실체다.


책임은

한 번에 덮쳐오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자라난다.


[무엇을 감당하지 않기로 했는지가 삶의 윤곽을 만든다]


사람은

무엇을 가졌는지로 드러나지 않는다.

무엇을 끝내 감당하지 않기로 했는지에서

더 선명해진다.


지금의 만족을 위해

나중의 무게를 앞당겨 쓰는 선택이 있고,

지금의 불편을 감수하며

선을 긋는 선택이 있다.


이 차이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능력의 문제도 아니다.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 가의 문제다.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삶은

항상 현재를 빌려 쓴다.

아직 자기 것이 아닌 시간을

먼저 사용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외상으로 사는 태도는 삶을 점점 얇게 만든다.]


삶을 외상으로 산다는 것은

아직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미리 누리겠다는 태도다.


처음에는

풍요로워 보인다.

부족함이 가려지고,

결핍이 잠시 잊힌다.


그러나 이 방식은

지속되지 않는다.

자기 몫이 아닌 것을

계속 끌어다 쓰는 삶은

반드시 균형을 잃는다.


그때 책임은

벌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결과처럼 도착한다.


[선택의 결과는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선택의 결과는

설명으로 가려질 수는 있다.

상황을 말할 수 있고,

환경을 이유로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은

그 모든 말을 지나

하나의 질문만 남긴다.


이 선택을

누가 끝까지 살아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책임은

반드시 자기 몫으로 돌아온다.

넘길 수 없고,

대신 짊어질 수도 없다.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 지속의 문제다.]


자유는

선택의 순간에 있지 않다.

그 선택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다.


설명 없이도 견딜 수 있는 선택,

미루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선택,

남의 몫을 끌어오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선택.


그 선택만이

자유에 가깝다.


[사유는 여기서 다시 속도를 늦춘다.]


이 지점에서

사유는 다시 한번 속도를 늦춘다.

선택과 책임 사이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하나의 장치를 보기 위해서다.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설명은

정말 사유를 돕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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