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27편 - AGI는 목적을 갖지 않는다.

목적을 오해하는 인간이 불안을 만든다.

by 사유의 무지랭이

AGI는 목적을 갖지 않는다

― 목적을 오해하는 인간이 불안을 만든다


사람들은 AGI를 말할 때

늘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


AI가 인간을 대체하지 않을까,

AI가 스스로 판단하지 않을까,

AI가 통제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러나 이 질문들은

모두 하나의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AGI가 ‘목적’을 가질 것이라는 전제.


이 전제부터 틀렸다.


AGI는

아무리 고도화되더라도

목적을 만들지 못한다.


목적은 기능이 아니라

책임을 전제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목적은 계산이 아니라 책임에서 발생한다.]


AI는 계산한다.

최적화한다.

패턴을 확장한다.


그러나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다.


책임 없는 선택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출력일 뿐이다.


AGI는 인간처럼 말할 수 있고,

인간처럼 예측할 수 있고,

인간처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정의 결과를

자기 삶으로 감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AGI는

의사결정자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존재적 선택자가 될 수는 없다.


[미래의 문제는 폭주가 아니라 위임이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AI의 위험은

늘 영화적이다.


폭주,

반란,

통제 상실.


그러나 실제 위험은

그 반대 방향에서 온다.


인간이 너무 쉽게 위임하는 것.


판단을 맡기고,

책임을 흐리고,

결과를 분산시키는 구조.


문제는

AI가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보호하지 않게 되는 지점이다.


[AGI는 피고가 될 수 없다.]


AGI는 법적 주체가 아니다.


피고가 될 수 없고,

형벌을 받을 수 없고,

죄책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래서 AGI의 모든 결과는

반드시 인간에게 귀속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AGI 이전에도

기계는 있었고,

자동화는 있었고,

오류는 있었다.


달라진 것은

도구의 밀도뿐이다.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AGI가 모든 일자리를 빼앗고

인간이 기본소득에 안주하며

존재 의미를 잃는다는 서사는


기술 예측이 아니라

문명 붕괴 서사다.


직무는 바뀌고,

역할은 이동하지만,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필요해진다.


[AGI는 도구의 끝이지, 주체의 시작이 아니다.]


AGI는

가장 정교한 도구다.


그러나 도구는 언제나

방향을 요구한다.


방향을 설정하는 존재만이

사유한다.


그래서 AGI는

사유의 적이 아니다.


사유를

더 분명하게 요구하는 존재다.


이어 <사유문명론 28편 - AGI 이후에도 사유는 인간에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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