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서 오는 질문의 사라짐
* 확신에서 오는 질문의 사라짐
[확신은 단단함이 아니라 사유를 멈추게 하는 지점이다]
확신은 흔히 강함으로 오해된다.
흔들리지 않는 태도, 결론에 도달한 상태,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안정.
그러나 사유의 관점에서 확신은 단단함이 아니라
사유를 멈추게 만드는 지점에 더 가깝다.
사유는 원래 불안정하다.
질문 위에 서 있고, 아직 열리지 않은 가능성 앞에서 머뭇거린다.
그래서 사유는 언제나 느리고,
자주 멈추며,
확신에 이르기 전까지 여러 번 되돌아온다.
[확신은 질문을 반박하지 않고 먼저 뒤로 밀어낸다.]
그러나 확신은 이 과정을 건너뛴다.
질문이 충분히 머물기도 전에
결론의 형태로 먼저 도착한다.
이때 벌어지는 일은 단순하다.
확신은 질문을 반박하지 않는다.
논증으로 꺾지도 않는다.
그보다 먼저, 질문을 뒤로 밀어낸다.
질문은 틀렸다고 말해지지 않는다.
다만 필요 없다고 취급된다.
이미 답이 있다는 이유로,
이미 정리되었다는 이유로,
질문은 말해질 자리를 잃는다.
[질문의 사라짐은 소멸이 아니라 이동이다.]
그래서 사유 없는 확신이 작동하는 장면에서는
항상 비슷한 풍경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묻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해가 깊어진 것도 아니다.
질문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이동이다.
[질문이 사라질수록 내면은 더 소란스러워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질문이 사라졌으니 조용해졌다고.
논쟁이 줄었으니 정리되었다고.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다.
질문이 사라질수록,
내면은 더 소란스러워진다.
[질문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멈춰 서야 한다.]
그래서 질문이 많은 경우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멈춰 서야 한다.
질문이 많다는 것은
사유가 살아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확신이 너무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속도를 유지한 채 질문을 처리하려 하면
질문은 하나씩 말해지지 못한 채
안쪽으로 밀려난다.
표현되지 못한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쌓일 뿐이다.
[질문이 사라진다는 것은 침묵에 들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지점이다.
질문이 사라진다는 것은
입을 다문 상태로 들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질문이 사라진 순간,
우리는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질문이 넘쳐나는 상태로 전환된다.
[더 많은 말과 설명은 질문의 부재에서 나온다.]
밖에서는 질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안에서는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이
서로 부딪히며 방향을 잃는다.
확신은 그 질문들을 다루지 않고,
질문은 말해질 통로를 잃는다.
이 상태에서 사람은
더 많이 말하려 들고,
더 강하게 주장하려 하며,
더 빠르게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그 말들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질문이 밀려났다는 사실을
가리기 위한 움직임에 가깝다.
[사유는 다음 장면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이 많아질수록,
설명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질문이 사라졌는지를
의심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사유는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을 요구한다.
질문이 사라진 이후,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장면 앞에서
다시 멈추게 된다.
이어 <사유문명론 48편 - 질문이 사라진 이후의 장면>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