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48편 - 질문이 사라진 이후의 장면

침묵이 아니라 설명이 늘어나는 순간

by 사유의 무지랭이

* 침묵이 아니라 설명이 늘어나는 순간


[질문이 사라진 뒤, 세계는 조용해진 것처럼 보인다.]


질문이 사라지면

세계는 한결 정리된 것처럼 보인다.

토론은 줄고,

의견은 수렴되며,

말은 단정해진다.


이 장면은 흔히

안정으로 오해된다.

혼란이 가라앉았고,

방향이 정해졌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질문이 사라진 자리는 공백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질문이 빠진 자리는

곧바로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

설명,

판단,

지침,


질문은 비어 있지만,

공간은 비어 있지 않다.


[침묵의 사회가 아니라 설명 과잉의 사회]


그래서 질문이 사라진 사회는

조용한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말로 채워진다.


사람들은

묻지 않는 대신 설명하고,

의심하지 않는 대신 규정하며,

머뭇거리지 않는 대신 빠르게 결론에 도달한다.


침묵이 아니라

설명이 늘어난다.


[설명은 질문이 없을 때 더 잘 작동한다.]


설명은 본래

질문을 전제로 한다.

질문이 있을 때,

설명은 방향을 가진다.


그러나 질문이 사라진 순간,

설명은 스스로 목적이 된다.

무엇에 대한 설명인지보다,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해진다.


설명은

질문이 없을수록

더 매끄럽게 작동한다.


[설명은 이해를 요구하지만 사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설명은 이해를 요구한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따라오게 만들며,

납득을 강요한다.


그러나 설명은

사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멈추지 않아도,

이미 정리된 세계 안으로

사람을 데려간다.


[질문이 없을수록 속도는 빨라진다.]


질문은 속도를 늦춘다.

그래서 질문은 불편하다.


질문이 사라지면

속도는 자연스럽게 빨라진다.

결정은 쉬워지고,

판단은 단순해지며,

되돌아보는 시간은 줄어든다.


이 속도는

효율처럼 보이지만,

사유가 빠진 속도다.


[이 장면에서 사유는 보이지 않게 된다.]


질문이 없고,

설명이 넘치며,

속도가 유지되는 장면에서

사유는 눈에 띄지 않는다.


사유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유가 허용되지 않는 상태에

더 가깝다.


묻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이 장면은 다음 질문을 강요한다.]


이 지점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생긴다.


질문이 사라진 자리를

설명이 채우고 있다면,

설명은 왜 이렇게 쉽게

사유를 대신하게 되었는가.


이 장면은

다음 분석을 요구한다.

설명은 어떻게,

그리고 왜,

사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가.


이어 <시유문명론 49편 - 설명은 왜 사유를 대신하려 드는 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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