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아니라 설명이 늘어나는 순간
* 침묵이 아니라 설명이 늘어나는 순간
[질문이 사라진 뒤, 세계는 조용해진 것처럼 보인다.]
질문이 사라지면
세계는 한결 정리된 것처럼 보인다.
토론은 줄고,
의견은 수렴되며,
말은 단정해진다.
이 장면은 흔히
안정으로 오해된다.
혼란이 가라앉았고,
방향이 정해졌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질문이 사라진 자리는 공백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질문이 빠진 자리는
곧바로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
설명,
판단,
지침,
질문은 비어 있지만,
공간은 비어 있지 않다.
[침묵의 사회가 아니라 설명 과잉의 사회]
그래서 질문이 사라진 사회는
조용한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말로 채워진다.
사람들은
묻지 않는 대신 설명하고,
의심하지 않는 대신 규정하며,
머뭇거리지 않는 대신 빠르게 결론에 도달한다.
침묵이 아니라
설명이 늘어난다.
[설명은 질문이 없을 때 더 잘 작동한다.]
설명은 본래
질문을 전제로 한다.
질문이 있을 때,
설명은 방향을 가진다.
그러나 질문이 사라진 순간,
설명은 스스로 목적이 된다.
무엇에 대한 설명인지보다,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해진다.
설명은
질문이 없을수록
더 매끄럽게 작동한다.
[설명은 이해를 요구하지만 사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설명은 이해를 요구한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따라오게 만들며,
납득을 강요한다.
그러나 설명은
사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멈추지 않아도,
이미 정리된 세계 안으로
사람을 데려간다.
[질문이 없을수록 속도는 빨라진다.]
질문은 속도를 늦춘다.
그래서 질문은 불편하다.
질문이 사라지면
속도는 자연스럽게 빨라진다.
결정은 쉬워지고,
판단은 단순해지며,
되돌아보는 시간은 줄어든다.
이 속도는
효율처럼 보이지만,
사유가 빠진 속도다.
[이 장면에서 사유는 보이지 않게 된다.]
질문이 없고,
설명이 넘치며,
속도가 유지되는 장면에서
사유는 눈에 띄지 않는다.
사유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유가 허용되지 않는 상태에
더 가깝다.
묻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이 장면은 다음 질문을 강요한다.]
이 지점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생긴다.
질문이 사라진 자리를
설명이 채우고 있다면,
설명은 왜 이렇게 쉽게
사유를 대신하게 되었는가.
이 장면은
다음 분석을 요구한다.
설명은 어떻게,
그리고 왜,
사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가.
이어 <시유문명론 49편 - 설명은 왜 사유를 대신하려 드는 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