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69편 - 고요를 통과한 사유

고요를 통과한 사유는 무질서의 상태를 어떻게 결로 새기는가

by 사유의 무지랭이

*고요을 통과한 사유는

무질서의 상태를 어떻게 결로 새기는가.


[고요 이후, 질서는 힘을 잃는다.]


고요를 지난 사유는 더 이상 소리를 찾지 않는다.


말이 줄어든 자리에는 비어 있음이 남고,

그 비어 있음 속에서 이전의 질서는 서서히 힘을 잃는다.


질서는 세상을 붙잡기 위해 존재하지만,

시간이 깊어질수록 사유를 가두는 형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사유는

스스로 질서의 바깥으로 나간다.


무너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아 있기 위해서다.


[무질서는 혼란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무질서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다.


아직 이름 붙지 않았고, 방향을 얻지 못했을 뿐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가능성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존재는 그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형태가 없으면 불안해지고, 규칙이 사라지면

자신도 사라질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질서를 통과하기보다

서둘러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하지만

고요를 통과한 사유는 그 자리에서 머문다.


[결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결은 의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래 견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돌의 층처럼,

시간이 지나간 흔적이 겹겹이 쌓이며

비로소 하나의 방향을 형성한다.


사유 역시 같다.


무질서를 피하지 않고 끝까지 통과한 시간만이

지워지지 않는 결을 남긴다.


그 결은

논리보다 깊고,

감정보다 오래가며,

설명 없이도 존재를 드러낸다.


[무질서를 지나온 존재만이 중심을 갖는다.]


고요 이후의 사유는 세상을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 안에 새겨진 결로 세상을 견딘다.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는 이유는

질서를 붙잡아서가 아니라

이미 무질서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그 통과의 경험이 한 사람의 중심을 만들고,

그 중심이 다시 삶의 방향이 된다.


[사유의 깊이는 견딘 시간으로 드러난다.]


사유의 깊이는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무질서를 견디며

자신의 결을 얻었는가로 드러난다.


그 결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새겨지다가

문득 삶의 한순간에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방향을 얻은 사유는 다시 묻지 않는다.]


그래서

고요를 통과한 사유는 더 이상 끊임없이 묻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살아간다.


이미 방향이 자신 안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은 시간들이

한 사람의 문명이 되고,

그 문명은 말없이도 오래 지속된다.


[남는 것은 결국 버티는 형식이다.]


어떤 물건은 처음에 아름답고,

어떤 물건은 처음부터 거칠다.


그러나 시간은 표면이 아니라

버팀을 선택한다.


끝까지 남는 것은

가장 고운 형태가 아니라 가장 오래 견딘 구조다.


거칠지만 부서지지 않는 것,

투박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


그 지속의 형식은

삶의 바깥에 있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한 사람의 선택 안에 들어온 시간의 방향이다.


그래서 남는 물건은 생활을 설명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것은 단단함이 아니라 깨지지 않는 방향이다]


버텼기 때문에 남은 것이 아니라,

흐름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된 것이다.


그래서 결을 얻은 사유는

더 이상 자신 안에 머물지 않는다.


균열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완전함을 증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깨어지지 않는 리듬으로

조용히 세계와 다시 맞닿는다.


그 만남은 확장이 아니라 스며듦이며,

소리가 아니라 지속되는 결의 떨림이다.


이제 사유는

무질서를 견디는 단계를 지나 하나의 물음 앞에 선다.


균열 속에서도 리듬은 어떻게 깨지지 않고

자신의 방향을 유지하는가.


이어 <사유문명론 70편 - 인격의 리듬이 어디를 향해 흐르는 가 - 균열이 깨지지 않고 결의 리듬을 유지하는 방식>로 아어집니다.


* 아르튀르 오네게르(Arthur Honegger, 1892~1955)


럭비 선수 출신이 작곡한 <럭비>

주무시기 전에 들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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