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리듬이 세계가 되는 과정
* 개인에서 문명으로
<한 사람의 리듬이 세계가 되는 과정>
[문명의 시작은 언제나 한 사람이다.]
문명은 집단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수많은 인구, 거대한 제도, 복잡한 조직이
문명의 외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향을 처음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한 사람이다.
한 존재의 선택,
한 사유의 전환,
한 리듬의 지속이
문명의 출발점이 된다.
[개인의 시간은 집단보다 깊다.]
집단의 움직임은 빠르지만 깊지 않다.
반대로 한 사람의 시간은 느리지만
깊게 내려간다.
문명을 바꾸는 힘은 넓이에서 나오지 않는다.
깊이에서 나온다.
그래서 진짜 변화는 다수의 합의가 아니라
한 존재의 통과에서 시작된다.
[리듬이 구조가 되는 순간]
처음에는
단지 한 사람의 습관에 불과했던 것이
시간을 통과하면
반복 가능한 형식이 된다.
그 형식이 공유되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축적되면 질서가 된다.
그리고 그 질서가 문명이라 불린다.
[보이지 않는 영향의 방식]
한 사람의 리듬은 즉시 확장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오랫동안 보이지 않은 채
조용히 지속된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그 리듬은
다른 존재들의 시간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그래서 문명의 진짜 영향은 전파가 아니라
침투에 가깝다.
[사라지지 않는 개인만이 남긴다.]
많은 사람이 흔적을 남기려 하지만
대부분의 흔적은 시간 속에서 사라진다.
끝까지 남는 것은
크게 외친 사람이 아니라
오래 지속한 사람이다.
지속된 개인만이 문명의 일부가 된다.
[한 사람이 세계가 되는 조건]
한 존재의 시간,
한 방향의 지속,
한 리듬의 반복이 충분히 오래 이어지면
그 개인은 더 이상 개인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하나의 구조가 되며,
결국 하나의 세계가 된다.
[문명은 결국 사람의 형식이다.]
문명은 돌과 제도와 기술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장 깊은 곳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시간이 있다.
그래서 문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한 존재의 리듬을 이해하는 일이다.
[부연]
철학은 끊임없이 외피를 만든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만,
그 답 위에 또 다른 개념을 덧씌우고
설명 위에 설명을 쌓으며
존재를 점점 두껍게 만든다.
이론은 갑옷이 되고,
체계는 방패가 되고,
언어는 보호막이 된다.
그러나 두꺼워질수록 나는 멀어진다.
사유문명론은 그 갑옷을 벗기는 길이다.
더 알기 위함이 아니라
덜 입기 위함.
쌓기 위함이 아니라
벗기기 위함.
설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줄이며
끝내 남는 것을 보는 것.
개념을 통과해
경험으로,
체계 너머에서
맨몸으로.
철학을 탈출한다는 것은
철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피가 된 철학을 부수는 일이다.
남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존재,
논리가 아니라 체온,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갑옷 없이 서는 것.
그 길을 만들기 위해
사유문명론은 시작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 에릭 사티(Erik Satie)
<짐노페디 1번 Gymnopédie No. 1>
‘무목적적 사유'의 공간을 열어젖히는 소리
주무시기 전에 들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