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79편 - 기술 이후의 문명

AI 이후에도 남는 인간의 구조

by 사유의 무지랭이

* 기술 이후의 문명

<AI 이후에도 남는 인간의 구조>


[기술은 문명을 가속하지만 완성하지 못한다.]


인류의 역사는 도구의 역사이기도 하다.


불, 바퀴, 문자, 인쇄, 전기,

그리고 지금의 인공지능까지


기술은 언제나 문명의 속도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기술은 문명을 움직이게 할 수는 있지만

문명을 완성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AI는 계산을 확장하지만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기억하고, 분석하고, 예측하며

인간의 사고 영역을 빠르게 확장한다.


하지만 그 모든 능력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영역은 여전히 비어 있다.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어떤 방향이 옳은가.


의미의 질문 앞에서 기술은 언제나 침묵한다.


[편의가 깊이를 대체할 수는 없다.]


기술은

불편을 줄이고

속도를 높이며

결과를 쉽게 만든다.


그러나 쉬워질수록 사유의 깊이는 얕아진다.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서

성찰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명의 위기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깊이의 소멸에서 시작된다.


[인간을 남게 하는 것은 기능이 아니다.]


기술이 대부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될수록

인간의 가치는 능력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속도도 아니고

정확성도 아니며

효율도 아니다.


오직


시간을 견디는 존재,

의미를 묻는 존재,

방향을 선택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을 끝까지 남게 한다.


[기술 이후에 다시 드러나는 것]


문명이 충분히 기술화되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오래된 질문이 다시 나타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끝까지 남는가.


기술은 이 질문을 지우지 못한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만든다.


[인간의 구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도구는 바뀌고

환경은 변하며

속도는 계속 빨라지지만


존재가 의미를 찾는 방식은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래의 문명도

결국

인간의 오래된 구조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기술 이후에도 남는 것]


모든 자동화가 끝나고

모든 계산이 완성된 뒤에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을 붙잡는 존재가 있는 한

문명은 여전히 인간의 것이다.


[부연]


타자기는 느린 기계가 아니다.

책임을 늘리는 기계다.


한 글자 한 글자,

물리적으로 눌러 찍힌다.


지우기 쉽지 않고,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타자기는 속도를 늦추는 도구가 아니라

결정을 요구하는 도구다.


글자 하나를 찍는다는 것은

그 글자 하나하나에 사인하는 일이다.


나는 이 단어를 선택했다.

나는 이 문장을 남긴다.


워드는 흐른다.

수정은 쉽고, 문장은 가볍게 지나간다.


그러나 타자기는 박힌다.

문장은 흔적이 되고,

흔적은 책임이 된다.


사유란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에 사인을 남기는 일이다.


빠름은 기술의 방식이다.

박힘은 인간의 방식이다.


타자기처럼 사유하라.

한 자씩,

의식적으로,

서명하듯이.


그렇게 남는 문장만이

주체의 문장이다.


* Philip Glass의 《Einstein on the Beach》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 1976)

<Knee Plays 무릎곡 3>


관객이 듣다가 달리기를 해도 된다니,

이 작품은 스토리를 따라가야 하는 작품이 아니라


듣다가 중간에 빠져도

처음과 끝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다는 점이다.


사유문명론과 같이 시간을 통과하는 구조물이라는 게

마음에 듣다.


주무시기 전에 들어 보시길.

시간 되시면 전편을 들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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