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아니라 남음의 방식
* 기억의 문명
<기록이 아니라 남음의 방식>
[문명은 저장이 아니라 남음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문명을
기록의 축적으로 이해해 왔다.
그 기록에는 문서, 대니터. 아카이브,
끝없이 쌓이는 정보들이
문명을 보존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저장을 결국 무너뜨릴수 있다.
결국에
사라지지 않는 것은 기록의 양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남음이다.
이 기억의 남음은
이 모든 저장 장치보다 더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된다.
[기억은 정보가 아니라 흔적이다.]
정보는 저장되지만 기억은 스며든다.
이 스며든 정보는 사유라는 리듬을 만나면,
저장은 외부에 남고
기억은 존재 안에 남는다.
그래서 어떤 문장은 읽히고 사라지지만,
어떤 의미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살아 더 강하게 존재하개 된다.
문명을 지탱하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흔적이다.
흔적은 단순한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아니라
베스티기아(Vestigia, 발자국)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 발자국을 따라 한 사람의 사유가 쌇여 문명을 만들어 가고 존재를 단단히 만든다.
[잊힘을 통과한 것만이 남는다.]
시간은 모든 것을 통과하는 시험을 통해
대부분은
잊히고,
지워지고,
흐려진다.
그러나 어떤 것은 잊히는 과정을 지나
더 또렷해지고 어떤것은 소리 없이 조용해진다.
그래서 남는 것은
처음부터 강했던 것이 아니라
잊혀짐을 통과한 것이다.
즉 시간을 통과한 것이다.
[남음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다.]
많은 기록은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진짜로 남는 것은
남기려 했던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남음은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 아니라
시간의 선택 받은 것들이다.
[기억이 문명의 방향을 만든다.]
문명은
무엇을 더 많이 아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무엇을
끝까지 잊지 않느냐로
결정된다.
그래서 기억은
과거의 보존이 아니라
미래의 방향을 만든다.
[보이지 않는 유산]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형태가 없다.
말, 태도, 질문, 침묵,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결.
그 보이지 않는 유산이 세대를 건너
문명을 이어 붙인다.
이어 붙은 문명이 미래를 만들어 준다.
[시간 이후에도 남는 것]
모든 기록이 사라지고
모든 데이터가 지워진 뒤에도
끝까지 남는 것은
하나의 느낌,
하나의 질문,
하나의 방향이다.
그 남음이 이어지는 한
문명은 계속 살아 숨쉬게 된다.
[부연]
기억의 문명에서 강조되는 사유의 특징은
* 아우구스티누스
기억을 단순히 과거의 저장소가 아니라 '신과 만나는 내면의 장소'로 인식.
* 비코(Vico)
역사적 기억과 시적 지혜가 이성보다 앞선다.
기억의 문명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기억의 문명은 사유의 깊이를 담당한다.
현대의 AI(계산의 문명)가 가진 데이터 처리 능력과
인간만이 가진 총체적 기억의 가치는 다르다.
기억의 문명에서 인간은 세계를 계산하거나
증명하려 하지 않고, 세계와 하나 되어 그것을 기억(상기)한다.
* 프랑시스 풀랑크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주무시기 전에 들어 보시길.
* 조대 <홍승>
높은 명성을 피해 속세의 티끌을 멀리했으며
마른 늪가에서 가죽옷을 걸쳐입고 홀로 낚싯줄 드리었고
천년이 지나도 평범한 선비였던 유문숙(광무제)이
미천하던 시절 옛 벗을 기억하고 있음을 떠올리네
사유문명론도 부춘강 아래 낚시터 엄릉뢰에서
조용하게 사유의 리듬을 유지 하며 쌇아 가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