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잠을 깨려고 습관처럼 인스타를 켰다.
팔로워들이 새벽에 올린 스토리를 넘기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설레고, 기뻤다.
내 생각을 담은 글은 늘 휴대폰에만 개인 소장했다.
새로운 취미로 글을 써보기로 다짐하며 블로그를 개설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글을 썼다.
올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즈음.
마음이 소란하고, 관계에 회의감을 느끼던 시기가 있었다.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나만의 시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 내 시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영상은, 나에게 큰 울림과 동시에 ‘세상을 대하는 다른 시선’을 보여주었다.
그때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영상들을 정성 들여 리뷰한 글이었다.
어떤 계기로 보게 되었는지, 왜 구독하게 되었는지,
특히 감명받은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내 시선에서 그 크리에이터는 어떤 사람으로 비쳤는지,
그 모습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까지.
줄이고 줄여서 쓴 글의 분량이 7000자 였다.
마음속 깊은 생각들을 눈치 보지 않고 쏟아내고 나니,
참 시원했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그 글을 해당 크리에이터가 캡처해 올려주었다.
너무 기뻐서 다시 블로그로 달려가, 캡처된 문장이 있는 문단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글이 캡처된 게 아니었다.
단어, 조사, 문장부호와 쉼표까지 동일한 같은 문장인데,
문장의 종결어미만 조금 다른 타인의 글이었다.
캡처된 문장을 검색하자,
타인의 글과 내 글이 동시에 떴다.
다시 한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번엔 너무나 속상했다.
그 글은 ‘해당 유튜버의 영상에 빠진 이유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라며 시작하는 400자 정도의 네 문단의 글.
내 블로그에서 예시로 든 영상,
그 영상 속 같은 부분에서, 같은 생각으로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30분이 넘는 200개의 영상 중에서, 인기 영상 순위에도 없는 그 영상이,
그리고 같은 포인트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심지어 내가 주변 지인에게 이 채널을 추천하며
가장 감명받았던 장면이라고 설명했던 부분이
종결어미만 다르게 동일한 문장으로 세 문단이나 겹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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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뼛속까지 대문자 F 인간이다.
논리보다는 감정이 먼저 반응하고,
감정의 온도에 따라 하루가 요동친다.
그게 비효율적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늘 T적인 사고를 동경해 왔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나다운 이유,
나답게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내 감정에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메모장에 문장을 쌓는다.
이동 중이든, 잠들기 전이든,
문득 떠오른 단어와 생각들을 모아 둔다.
그리고 글이 거의 완성되면 GPT에게도 묻는다.
“이 글을 검색해서 누군가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GPT는 내 글이 감정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더 정돈된 문장을 추천해 준다.
하지만 나는 내가 쓴 문장을 그대로 둔다.
왜냐하면 GPT가 고쳐준 문장은
내 말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의 숨결이, 문장의 결이 달라진다.
GPT의 감상평은 감정적인 글을 대하는 한 명의 객관적인 독자의 생각으로 남겨둔다.
인용인지, 차용인지, 도용인지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나에겐 그 글을 쓸 때의 마음과 기록이
모두 시간순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한눈에 내 문장임을 알아봤다.
특히 캡처된 구절은
따옴표, 쉼표, 마침표, 문장의 어순까지.
그 문장을 문단의 서두에 둘지, 말미에 둘지
며칠을 고민하며 썼던 시간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과정은 내 대화 기록과 노트에 모두 남아 있다.
해당글도 고민의 기록과 감상평이 채팅에 다 남아있다.
그래서 정말 착각했다.
그 글이 내 글이라고 —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나는 그 문장을 쓰기까지의 고민을 기억한다.
그리고 쉼표 하나에도 어떤 마음이 머물렀는지 기억한다.
그래서 너무 속상했다.
내가 바라본 사실관계는 여기까지다.
그래도 오늘 하나 남은 건 있다.
그 크리에이터가 내가 쓴 글의 결에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
누가 쓴 글이냐보다,
어떤 내용이 그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그것 하나만 기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