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J님(남편) 저를 따라 한 번 말해 봅니다.”
나를 마주한 남편이 상담선생님이 하는 표현을 따라 내게 말했다.
“여보, S(아내)야. 니가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나도 같이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싶은데”
“난 그렇게 행복해 본 적이 없ㅇ....잠시만요”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J가 숨죽여 운다.
가슴속 한켠 어딘가에 꼭꼭 눌러두었던 무언가가 터져 눈물이 되어 멈추지 않고 흐른다.
그런 널 보며 나도 함께 울고 만다.
너의 눈물이 그때의 너도 나처럼 행복했었다는 반증인 것 같아 기쁘면서도 그 행복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니가 안쓰러워 목이 매인다.
"이번엔 S님(아내), 남편을 바라보고 말해봅니다."
이번엔 내 차례다.
“여보, J 씨”
“난 분명 그때가 너무 행복해서 표현한 것뿐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 행복이 끝나버릴까 두려워서 소리 내어 붙잡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
“나의 표현이 너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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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귀한 여름의 저녁날을 집에서만 보내기 아쉬워 남편과 아이와 밖으로 나갔다.
친구에게 소개받은 맛있는 고깃집에 가 저녁을 먹고 근처 천이 흐르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아이는 천을 가로질러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보겠다며 저만치 앞서 뛰어가고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딱 좋은 거리를 두고 남편과 나란히 걷는 그 순간이 사무치게 행복했다.
“여보! 나 지금 너무 행복해!”
물끄러미 남편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어 보았지만 남편은 그런 나를 웃으며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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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주의 부부상담 시간,
남편이 문득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며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기분이 좋을 때면 행복하다고, 기쁘다며 말하곤 하는데 가끔 그 표현이 자기에겐 부담이 될 때가 있다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행복해하는 여보를 보면 기쁘고 좋은데 한편으론 두렵다고 했다. 나의 행복하다는 말이 자기로 하여금 이 행복을 언제고 지켜내 줘야 하는 것처럼 들려 마냥 함께 행복해지지 않는 게 자기도 이유를 몰라 답답하다 했다. 자기가 이 행복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느껴진다고..
여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박하듯 말을 이었다.
“난 정말 행복해서 표현한 건데? 요즘은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다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 중이거든요."
이번에는 상담선생님이 조금 더 말을 이어가려는 나를 멈추게 했다.
“아, S 씨. 분명 행복한 마음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말 안에는 S 씨의 저 깊은 마음속에 있는 이 행복이 깨질까 하는 불안함이 담겨있었던 것 같아요. 그 감정이 J 씨에게 부담으로 느껴졌을 수 있고요.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야. 이렇게 행복해야 하는 거야. 같은 마음이 S 씨로 하여금 더욱 그 표현을 부추기게 만든 거죠.”
아니에요! 정말 전 순수하게 행복함만을 표현하고 싶은 거였다고요!라고 선생님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는데 마치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분명 그날의 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고 그런 마음의 표현일 뿐이었는데,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니 그때의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혹은 애써 외면하려 했던) 진짜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화끈하기까지 했다.
그날, 그 순간은 그저 좋았던 시간으로 지나간 줄 알았는데 다시 곱씹어 보니 너도, 나도 정말 담아냈어야 할 마음들은 각자의 가슴속에 눌러둔 채(어쩌면 그런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 채) 나누지 못했구나 싶다.
나는 행복이라는 말에 나의 불안을 감추려 했고,
넌 지난날의 결핍으로 그 행복을 가려버렸네.
늦게나마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마주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오늘까지도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너와 나의 진심을, 지금 우리의 상황을 모르는 게 약이었다고 해야 할까.
어렵게 꺼내어 낸 너와 나의 솔직한 날 것의 마음들이 우리 사이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맺어주는 또 하나의 실이 되었길 바라며 그날의 기록을 남겨본다.
나의 불안도 너의 결핍도 끝내 온전한 행복으로 채워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