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가 쉬운 시대
나는 10년차 캘리그라피 작가이다.
28살에 데뷔했으니(나이가 표시나는구나 ((먼산)) ...)
올해로 11년째인 셈이다.
내가 데뷔하던 시절만 해도 그래도 2세대들이 등장하는 시기라고 하였고,
또 전문 교육 기관도 그냥 몇 안되는 그런 시대였으니,
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은 지금 생각하면 큰 행운이였다.
당시 나는 대구라는 지역에 있었고,
서울의 강**캘리그라피와 필*이라는 대표 교육과정을 수료한
선생님들이 각 지역에서 조금씩 활동을 시작하던터라
흔치 않은 블루오션의 분야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그런 전문 교육기관을 거치지 않고 자생적으로
스스로 손맛글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신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그 당시
초년 직장인으로서는 비싼 수업료였지만 과감하게 지르며(잘 지르는 스타일이다)
시작했던 나였다.
사실 거의 선생님 작업실에서 반은 라면과 떡볶이 맛집이 근처에 있던터라
시골 할머니집 같은 작업실에 들어설때면 노는게 반이였지만,
그런 선생님의 스타일이 생각보다 나와는 잘 맞아서 신나게 꾸준하게 3개월을
수료했었다. 선생님도 개성 강한 학생으로 기억할만큼 나름 자기주장이 강한 나는
핑계도 잘 만드는 농땡이였으나 열의를 보이는 것을 기억하시리라.
그렇게 카페에서도 어디서든 즐겁게 쓸 수 있음을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가감없이 알려준 선생님 덕분에 그해 겨울 나는 영화 타이틀로 데뷔를 하게 된다.
장진감독의 '로맨틱헤븐'
옴니버스식의 4가지 주제를 가진 영화인데(많은 이가 감독의 이름만 아는 작품이라 안타깝...)
이 데뷔 또한 참으로 웃겼던 부분이다.
나는 이런 브런치는 아니나 소셜미디어를 아주 일찍부터 시작한 1세대로서
트위터, 미투데이 등 국내외 기업들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했었다.
물론 그 인연으로 지금도 열심히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
(여담으로, 인스타그램 전문가가 나를 '인스타그램의 암모나이트'라 부를만큼
초기 멤버로 활동 했었다)
그 당시 미투데이라는 네이버에서 서비스하던 소셜 서비스에서 배우는 과정을
생중계하며 글씨와 생각을 올리던 내게 감독님이 직접 타이틀 작업을 제안하신 것이다.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았던 의뢰는 소중했기에 이미 선생님 작업실을 일부러 찾아가
완성할만큼 다 완성해두고, 보내지 않았다. 거짓말 같아서.
왜? 내가? 나한테? 오마이갓!
하지만 신인 혹은 새로운 시도에 굉장히 능동적인 감독님의 제안은 사실이였고,
나는 그렇게 '데뷔'를 공식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닉네임으로 활동했던 것이 '헤이데이' 였고 그렇게 시작된 좋은 뜻은 여전히
그 '뜻'을 이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ㅎㅎ
누구나 시작이 있어 지금이 있듯 '헤이데이캘리그라피'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후 다양한 작업과 수업, 기업강의 등으로 꾸준함을 유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그건 다음편으로...
최근에 작업한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슬로건 같은 나의 캘리그라피를 덧붙여본다.
인스타그램
본캐 : https://www.instagram.com/heyday/?hl=ko
부캐 : https://www.instagram.com/heydaycalligraphy/?hl=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