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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Oct 05. 2019

마녀_7

정상회담

지선은 매우 밝고 명랑했다. 엄청 강하고 화려할 것 같았던 선입견에 내심 나름 좀 긴장했던 지수였다. 지선은 만나자마자 지수의 외모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어머, 너무 피부가 좋으시다. 역시 제일 잘 나가는 쇼핑몰 오너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지금 입고 계신 건 다 브러시 옷이죠? 딱 알아 보겠네. 요즘 주변에 다 브러시 얘기 뿐이라서 저도 귀국하자마자 안 볼 수가 없었어요."

"아, 정말요? 알아봐주시니 감사해요. 귀국하신지는 얼마.."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한 두달 됐죠. 오랜만에 오니 다 새로워요. 완전 캐치업 중."

"그러시군요, 주문 먼저 하시죠."

"아 네 그럴까요? 이 집은 뭐가 유명할까. 전 배고프면 핑 도는 성격이라, 딴 건 다 참아도 배고프면 완전 화나는 스타일이거든요. 호호호."

"이 집 다 맛있긴 한데, 카프레제 샐러드랑 앤쵸비 파스타가 시그니처 메뉴긴 해요."

"어머 완전 맛있겠다. 전 그럼 그걸로 할게요. 파리에 있을 때 프랑스식을 하도 먹어서, 이태리 음식이 완전 땡기는거 있죠."


지수 질문이 끝나기 전에 대답하고 무슨 말을 해도 리액션이 좋은 그녀를 보고 지수는 마음에 들었다. 도도하고 새초롬한 여자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지수는 볼수록 지선이 마음에 들었다. 지선이 있던 브랜드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여성이 없는 백화점 메이크업 브랜드, 아멜리에였다. 해외 여행자들을 통해서 세포라가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할 때 미국에서 꼭 득템해야 하는 아이템으로 입소문이 났다. 마스카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컨투어링, 파운데이션, 립 제품들도 꽤 괜찮게 자리 매김을 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만나 뵈니 너무 좋네요. 저도 아멜리에 너무 팬이에요. 제품도 몇 개 있어요. 사실 한국에서 갑자기 떴잖아요."

"어머, 어떤 제품 좋아하세요?"

"저는 거기 글리터 섀도우 너무 좋아해요. 뭐 매일 하기는 그렇지만, 그냥 가끔 포인트 주고 싶을.."

"대박. 완전 반갑다. 그 제품이 다른 나라에선 완전 망했는데, 한국에서만 대박 났어요. 그래서 APAC 미팅 때 제가 베스트 프랙티스로 발표하고, "

"베스트 프랙티스요?"

"어머, 그런 용어 잘 모르시는구나. 글로벌 기업에서 쓰는 용어인데, 어떤 나라에서 굉장히 잘한 사례를 가지고, 서로 러닝을 셰어링하는 걸 말해요. 한 마디로 한국이 잘했으니 너네도 보고 배워, 하고 발표한거죠."


이 한 마디는 지수의 귀에 박혀 순간 살짝 거슬렸다. 친절한듯 지만 약간 가르치는듯한 어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의 괜한 예민함이라고 생각하고 웃어 넘겼다.


"한국에서 유난히 잘 나간거군요."

"그 때 굉장히 세일즈 팀에서 보수적으로 보려고 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글리터 룩 자체를 안 좋아한다나. (갑자기 살짝 웃으면서) 하 나참, 기가 막혀서, 메이크업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열 받아서 더 열심히 했죠. 그래서 보란듯이 성공했어요. 그 전까지 있었던 프레임을 완전 바꿔놨어요. 왜 그렇게 사람들이 광고 밖에 모르는거야. 글로벌 회사들이 그래요. 퓨어 미디어에 집중해야 된다고. 내가 아니라 그랬지. 사람들 나 완전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 보고 했는데 보란듯이 성공시켰잖아요. 호호. 어머 말이 길어졌네. 아니 나에게 너무 특별한 상품이었는데 그걸 딱 찝어 주시니까 반가워서."

"아니에요, 그런 비하인드가 있다는걸 들으니 재밌었네요. 저희 브러시는 사실 규모가 작아서"

"아, 제가 MBA에 간 건 사실 브러시 같은 브랜드를 더 널리 알리는 것 뿐 아니라 조직을 구성하고 세팅하는 것도 배워보고 싶어서예요. 경영 전반에 관한 거죠. 그래서 오늘 뵙자고 했을 때 지수 대표님 보고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인상도 좋으시고 스마트하세요."


지수는 살짝 갸우뚱했다. 사실 지선을 만나면 뭘 질문해야할지 머리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왔다. 막상 만나니 지선이 워낙 말이 빠르고 끊이지 않아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자기는 듣는게 90%였던 것 같은데 내가 무슨 말을 해서 스마트하다고 하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좋은 말이니 예의상 하는 말이겠지 하고 넘겼다.


"처음에는 갖춰진게 없어서 답답하실 수도 있어요."

"어머, 저는 챌린지를 좋아해요. 브러시가 그렇다고 지금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패션 쪽으로는 좀 자리를 잡았잖아요. 몇 천억 가야죠. 더구나 요즘 트렌드가 뭡니까. 디지털이잖아요.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해보니 럭셔리도 결국 디지털이더라구요. 그런데 이커머스다? 이건 끝난거죠. 마케팅 조직 인원 없는 것도 맘에 들어요. 사람들 자르는 것보단 새로 내 손으로 뽑는게 좋죠. 선수들끼리 다 알면서."

"걱정 되는 건 연봉이에요, 만족하실지."

"연봉은 좀 맞춰 주셔야죠. 아니면 본봉은 크게 안 바랄테니 매출 비중으로 받는 건 어때요? 약간 러닝 개런티 같이?"

"우선 희망 연봉을 말씀 주시면, 저희가 한 번 내부적으로 맞춰 볼게요."

"되겠죠. 이렇게 훌륭하신 오너분이. 사업 감각이 너무 좋으시니까, 저한테도 새로운 도전일 것 같아요."


지수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듣다 온 느낌이었다. 중간 중간 좀 격한 표현도 있긴 했지만, 그냥 그건 시원 시원한 성격인거라고 생각했다. 도도한 것보다는 훨씬 좋다고 생각했고 직원들도 그녀에게 보고 배울 것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예전 연봉과 희망 연봉을 받아보고는 그 동안 준적이 없는 수준의 월급이라 좀 망설여지긴 했다. 하지만 그런 글로벌 뷰티 브랜드도 생각보다 연봉이 세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하는 것처럼 예전 연봉과 희망 연봉의 중간 어딘가에서 협상을 했다. 단, 본봉 비율을 좀 낮추고 성과급을 높였다. 분기별 매출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지선은 저녁에 얘기한 것처럼 러닝 개런티가 자기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며 자신했다. 자기가 지나간 브랜드는 하나 같이 두 자리수 성장은 기본이고, 세자리 성장도 했었다며,


"성과급 비율이 높으면 저한테 더 많이 주셔야 될껄요? 호호."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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