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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Oct 06. 2019

마녀_9

애정전선

지선이 입사 둘째날, 화요일 아침 은진은 자신의 웹 디자인 팀 네 명 중, 화장품 개발을 같이 했던 지영 대리를 데리고 황상무와 미팅을 잡았다. 황상무는 여느 때처럼 다소 호들갑스럽게 그들을 반겼다.


- 황상무; 어머, 이렇게나 예쁜 분들이 개발하셔서 우리 메이크업 제품이 그렇게 잘 나갔구나. 호호.

- 은진; 저희 제품 써 보셨어요? 지난 번 판매했던 제품도 보여 드리고, 오는 11월에 출시할 제품 기확인도 보여드리려고요.

- 황상무; 아뇨, 아직 못 써봤죠. 이 아이들이구나. 이거를 가지고 어떻게 마케팅을 했죠?

- 은진; 아뇨, 별 다른 마케팅은 하지 않았구요, 저희 사이트에서 판매했죠. 물론 최상단에 배너도 띄웠고, 우리는 지수 대표님이 인스타 포스팅 해주는 것만큼 효과 좋은 마케팅이랄게 없어서요.

- 황상무; 대표님이 너무 예쁘시긴 한데, 더 이상 이렇게 인플루언서에 의존하는 마케팅으로는 다음 스텝을 보기 어려워요. 왜 어려운지는 아세요?

- 은진; 네..?

- 황상무; 인플루언서도 에이징이 되잖아요. 타겟 연령대라는 게 있는건데, 지수 대표님이 벌써 사업 시작하신지 7년째잖아요. 이제 이쁜 언니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는 어떡하시려고요? 벌써 서른이 넘으셨는데요. LVMH나 이런 명품 브랜드들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너무 올드해지면 가차 없어요. 그들이 가진 자산을 이용하되 계속 해서 새로운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영입해서 브랜드가 나이들지 않게 하는 작업이 중요하단 말이죠.

- 은진; 그렇지만 여태까지 브러시는 곧 지수 대표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아직까지 지수 대표가 이미지가 좋아서..

- 황상무; 아니 아니, 난 지금 은진 팀장님과 그런 의견을 나누려고 하는게 아니예요. 그게 팩트라구요.


은진은 같이 들어간 지영 대리에게 살짝 민망함을 느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나도 못하고 있었다. 지난 번에는 이런 컬러를 골랐고, 우리의 립 어플리케이터가 왜 브러시 타입으로 개발 되었고, 소비자 반응은 어땠고, 컬러는 어떻게 골랐고를 설명해주고 싶었다.


- 은진; 이게 지난 번 시즌에 출시한 저희 6가지 립제품이었구요, 최소 발주로 진행해서 모두 완판 됐어요. 가장 먼저 매진 된 순으로 1번부터 6번까지 번호 표시 했습니다.

- 황상무; 이 제품 RSP가 어떻게 되죠?

- 은진; 네?

- 황상무; Retail Service Price, 아 그러니까, 소비자 가요. 판매가, 판매가.

- 지영; 2만 8천원이요.

- 황상무; 어머, 옷에 비해 립글로스가 좀 비싸긴 하네. 경쟁 브랜드는 뭘로 설정했는데요?

- 지영; (머뭇거리면서) 저희 직원들끼리 회의해서..

- 황상무; 감으로?

- 은진; 네, 첫 제품이라서 가격은 조금 공격적으로 해보면서 발주 수량 최소화로 해서 슬슬 감을 보자는게 지수 대표님의 전략이었어요.

- 황상무; 이럴 줄 알았어. 원가는요?

- 지영; 워, 원가는..

- 은진; 원가는 ODM사에서 경영진에만 공유했구요. 나중에 따로 말씀 드릴게요.

- 황상무; 아니 지영 대리님이 이 프로젝트 리더 아니셨어요? 프로덕트 매니저. 근데 원가를 모르고 출시했다고요? (갑자기 웃음) 하하. 경쟁사 가격 조사로 우리 포지셔닝 잡고, 거기에 맞게 P&L 차트 상에 이 제품 판매하면 이익인지 손핸지 알고 목표 원가를 설정했어야 하는건데..

- 은진; 상무님, 우선 일단 저희 지금 이미 진행하고 있는 다음 시즌 기획안이 있어서요.

- 황상무; 아니 아니,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해야죠. 저도 어디서 황지선이 왜 갑자기 브러시 가더니 이런 제품 냈냐 소리 들을 순 없잖아요. 업계에서 나 다 아는데. 저 오고 나서 나오는 제품은 이익률, 제품 사용감, 소비자가 부터 다 다시 봐야할 것 같은데요. 제품 수익이 나야 마케팅 비용을 쓰죠. 장사하는거 돈 벌려고 하는거 아닙니까.

- 은진; 저희 올해까지는 신규 사업이고 별도 인원 충원도 없이 진행되는거구요. 브러시의 팬들 중에 지수 대표님이 화보에서 어떤 제품 바른거냐고 메이크업에 대한 질문도 많이 해서 시작된 거거든요. 그러니 일단 FW까지는 룩에 충실해서 해보자는게 회사의 방향성입니다.

- 황상무; 네네, 제가 이제 입사를 해서 아직 워킹 컬처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많겠죠. 원가 모르는 건 회사 방침이라고 쳐도, 담당자가 이렇게 소비자 가격도 전략없이 짠 거는 제 15년 마케팅 인생에 처음 보는 거라 좀 당황스럽네요. 그런 이노베이션과 도전들이 브러시를 이 규모까지는 키웠겠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좀 다르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 은진; 네, 일단 수진 팀장에게 받은 올 FW 시즌 룩북이구요, 여기에 맞춰서 개발되고 있는 8가지 컬러입니다. 지난 시즌에 개발된 6가지 컬러 중 잘 나갔던 Top3 컬러는 기존대로 출시하고, 가을 겨울에 맞는 다섯 가지 컬러를 새롭게 출시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는 특별히 섀도우 2종과 블러시 2종을 출시해서 다양한 룩을 만들 예정이예요.

- 황상무; 잠깐, 섀도우랑 블러시요? 그 동안 립 밖에 없었는데, 섀도우는 패션 브랜드니까 그렇다 치고, 블러시는 좀 아닌 것 같은데. 지영 대리님, 블러시 마켓 사이즈는 좀 찾아 보셨어요?

- 지영; 마켓 사이즈...

- 황상무; 전체 메이크업 시장에서 그 Portion이 얼마나 된다고 블러시를 해요. (제품 샘플 들고) 그리고 이거 딱 봐도 원가율도 안 좋게 생겼네. 제가 아멜리에를 매년 세자리수 성장 시킬 때도 블러시는 잘 안 되더라구요. 한국인들이 아직 블러시를 많이 안해.

- 지영; 아, 그런데 저희 고객들이 지수 대표님 블러시 문의를 많이 해왔고, 블러시 옷들 입는 사람들은 또 이런 피치 컬러 블러시 많이 하고 올리더라구요.

- 황상무; 얼만큼 많이? 많이가 뭐 몇십명이에요, 아니면 몇 백명이에요, 아니면 우리 고객의 50%예요? 많이라고 하면 제가 모르잖아요. 호호.

- 은진; 아, 상무님 그런 스터디는 저희 회사가 여태까지 약한게 맞는데요, 저희는 우리가 브러시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살 것 같은 제품, 가격으로 승부하자는 게 회사의 경영 방침이기도 합니다.

- 황상무; (브러시를 손가락으로 꼭 눌러보며) 이 브러시 경쟁력은 뭔가요?

- 은진; 지영 대리님?

- 지영; 아, 그, 그게.. 우리 FW 시즌 컬러랑 어울리는 복숭아 빛이랑 핑크 빛이고, 윤기보다는 좀 파우더같이..

- 황상무; 매트하게?

- 지영; 네.

- 황상무; 하긴 다른 제품들도 전반적으로 소녀 소녀 하고 파우더리 하니까 말이 안 되는건 아니네요. 그럼 코스모인터랑 미팅할 때 무슨 얘기 하면 되죠?

- 은진; 사실 지수 대표님이 주신 코멘트가 몇 개 있었어서요. 섀도우 같은 경우 네 칸 중에 마지막 한 칸 정도는 잔잔한 펄 감 좀 올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립에서는 우리가 다 매트한 것 밖에 없으니까 고광택 제품 두 컬러 정도 해보자. 블러시는 별다른 말이 없었구요. 사실 파리나 뉴욕 FW 컬렉션 메이크업 트렌드 보고 최대한 많이 반영한게 블러시였어요. 립은 컬러도 많은데다 팔릴 컬러가 뻔하구요. 섀도우도 4가지 컬러 팔레트라서.

- 황상무; 섀도우 4구 팔레트가 컬러가 많다고 생각하실 수 도 있지만요. 잠시만요..


황상무는 작은 한숨을 쉬더니 머리를 역결로 넘겼다. 머리가 넘어간 그녀의 헤어에 큰 볼륨감이 들어갔다.


- 황상무; 요즘은 이런 10개 이상, 심지어 몇십개 짜리 컬러 팔레트가 유행이예요. 섀도우 시장을 주도하는 건 이런 여러 컬러들인데, 겨우 4구 팔레트인것도 좀 마음에 안 드네.. 지수 대표님이랑 얘기 좀 해봐야겠어요.

- 은진; 뷰티 상품은 제가 다 보고하고, 저희 온라인 팀에서 상품 컨펌을 하고 있어서요.

- 황상무; 그니까, 그니까 이렇게 나왔잖아. (웃으며) 이렇게 만들어주면 제가 홍보하고 팔러 다닐 수가 없어요. 온라인 MD들한테 보여주기가 좀 그렇네.

- 은진; 온라인 MD는 만나실 필요 없으신게, 뷰티는 아직 자사몰에서만 판매하고 있어요.

- 황상무; 아, 그래요? 뭐 아무튼, 기자들한테 뿌리고 잡지에 나가야될 거 잖아요.

- 은진; 저희는 잡지도 사실 큰 덕을 본 적이 없는 브랜드라서 지수 대표님 인스타나 브랜드 사이트 등에서 CRM으로..

- 황상무; 아니 아니, 오해하지 마시구요. 은진님하고 이렇게 예쁜 두 분이 너무 잘 개발해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얼른 갖다 팔고 싶어요. 근데 이제 갓 와서 브랜드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도 분명 많을 거예요. 여러 번 물어봐도 지겹다고 생각하지 말고 설명 부탁 할게요. 회사에서 (손으로 넓게 원을 그리며) 많은 구성원들이 하나의 비전을 보게 되면 그 후로는 일이 술술 풀리는데, 그 하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거든.

- 은진; 일단 목요일에는 코스모인터에서 새로운 처방이랑 용기를 가져 온다고 해서요. 지수 대표님이랑도 공유된 내용이니까 같이 참석 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 황상무; 처방? 아, 포뮬라를 처방이라고 하는구나. 알겠어요. 지수 대표님 너무 센스 있으신데 화장품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신지 잘 모르겠네. 어쨌든 제가 많이 도움 드리고 싶어서 그런거니까요.

- 은진; 저희도 많이 배우면 좋죠. 알겠습니다.


은진은 그렇게 황상무와의 첫 미팅을 마쳤다. 황상무는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았다. 내내 웃는 얼굴인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은진은 이미 개발 중인 4구 섀도우 2종과, 블러시, 립 제품들의 컬러에 대해서 공유하고 의견을 듣고 싶었다. 사실 지난 번 립 제품이야 어떻게든 소비자로서 느끼는 바를 토대로 피드백해서 제품을 출시했지만, 상품 가지수가 많아지니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개발 중인 샘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뭔가 정신 없는 이야기에 홀린듯 나왔다. 이렇게 목요일에 김종찬 과장을 만나면 되는 건가 싶었다. 사실 거의 다 결정된 제품들을 최종 컨펌하는 자리 정도로 생각했다. 지영 대리는 이렇게 회의해서 각종 의사 결정할 사항들에 대한 도장을 찍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은진은 자기도 걱정 됐지만 이렇게 말했다.


- 하긴, 이제 갓 온 분이 거의 다 결정된 제품을 보시니까 저런 반응이 있을 수도 있는거지. 우리가 지금 일정에 쫓겨서 너무 걱정하고 있는 걸꺼야. 지영 대리도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아트워크는 지수 대표한테 보고하기로 한 그 두 방향성 좀 더 디벨롭해서 목요일에 종찬 과장님 미팅 끝나고, 따로 보고하고 최종 결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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