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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Oct 08. 2019

마녀_10

종찬미팅

황상무는 회사의 이런 저런 부서를 돌며 부산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수진이 이끄는 기획팀과 은진이 이끄는 웹 및 현재 임시 뷰티 개발탐을 제외한 나머지 부서는 모두 그녀 소속이었다. 인사 총무, 운영, 홍보, 영업 사원들과 미팅하며 현재까지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었는지를 들었다.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화이팅 넘치는 분위기를 만드는 건 황상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화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각 부서가 다소 두서 없이 일하던 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이런 저런 일들을 지시했다. 모두 듣고 보면 맞는 말이었기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들어 거래처별로 세금 계산서 발행 후 입금 일자를 통일화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었다. 브러시의 직원들은 그녀의 요구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따라가면 되겠거니 했다. 문장의 3분의 1정도는 영어로 유려하게 풀어내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 어느 지점에서 질문을 해야할지 딱히 생각할 수 없었다.


어느덧 입사 4일 차, 코스모인터의 종찬과 미팅이 잡혔다. 오후 2시에 있을 미팅을 위해 은진은 지난 번 보다 조금 더 자료를 보강해서 만들었다. 지영 대리에게 각 제품이 며칠 만에 완판 되었는지와 어떤 화보를 제작했었는지 어떤 옷과 매치해서 팔렸으며 그 옷들은 각각 팔림새가 어땠는지 자료를 만들라고 했다. 이번 FW 컬렉션은 우리의 어떤 옷과 매칭 되어서 판매될 것인지도 이미지 보드를 만들었다. 일을 지시하면서도 자신이 꽤나 촘촘하게 미팅을 준비하게 있다고 생각하고 내심 뿌듯했다. 상품기획자는 아니었지만 화장품 회사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종찬은 느끼하지는 않지만 꽤나 붙임성이 좋았다. 은근 유머러스 하기도 해서 은진과는 업무를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친해졌다. 은진의 예전 직장 친구들에게도 좋은 평을 듣고 있던 영업인이었다. 은진은 종찬과 점심을 먹은 후에 미팅을 하기로 했다. 둘은 근처의 베트남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종찬이 완판 기념으로 쏘겠노라 했고 은진은 그런 너스레가 싫지 않았다.


- 지난 번에 립브러시가 그렇게 한 달 안에 완판 돼서 저도 얼마나 안심했나 몰라요. 사실 그 때 지수 대표님께서 브러시 타입으로 어플리케이터 막판에 바꾸자고 하셔서 또 그것도 원가 올라가고 뭐 하면서 어쨌든 다들 고생했잖아요.

- 그러게요. 저도 화장품 회사에서 웹 디자인만 해봤지 제품은 처음 만들어 보잖아요. 잘 되어서 너무 좋았어요. 솔직히 브러시 입사해서 아무래도 패션 회사니까 저는 만들어진 걸 웹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하다보니 약간 기획 업무 같은게 해보고 싶었거든요. 전문적이지도 않은 저희가 과장님 같은 분 만나서 다행이었죠 뭐. 처음 하는데도 시간 많이 써주시고 진짜.. 정성이 보여서 너무 감사했어요.

- 요즘 제조사에서도 다 알아요. 더 이상 큰 회사에만 의존해서는 성장하기 힘들다는 거. 요즘 큰 브랜드들은 유지만 해도 다행이잖아요. 이런 작은 브랜드들 마켓 셰어를 야금 야금 먹어야 회사가 성장하거든요. 근데 브러시는 솔직히 말하면 왜 더 일찍 뷰티를 시작 안하나 생각했어요.

- 거짓말, 과장님이 우리를 원래 알았다고요?

- 그럼요. 아니 진짜요, 제가 이미 일도 진행하고 있는데 뭐하러 거짓말 합니까. 요즘 저희 영업 사원들도 브랜드 돌아가는거 시장 상황 이런거 잘 알지 못하면 영업이 안 돼요. 패션 인플루언서분들 중에 이미 뷰티에 눈독 들이는 분들 많이 있잖아요. 당연히 욕심 났죠.

- 진짜 지난 번에는 립도 서너개만 내려다가 여섯개 내자고 해서 갑자기 심장이 덜컥 했는데. 직장인이라 손이 작아서요. 근데 이번에는 립에 블러시에 섀도우에.. 부담이 커요. 립은 여덟개, 섀도우랑 블러시 두개씩 하면 열두개 SKU인데, 지난 번의 두배잖아요.

- 아 팀장님 진짜. 알아요. MOQ(최소발주수량) 얘기하실라고 그러시는거죠? 저도 지금 회사 내부에서 욕먹어 가면서 생산 라인 쪼고 있어요.

- 과장님 이래서 좋아. 말하면 척척 알아들으시니까. 사실 섀도우 하나하고 립 두 개는 패션이랑 맞춰야 된다니까 내긴 내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런 컬러 제품을 내가 써본 적이 없어.

- 걱정 마세요. 맥이나 바비 브라운도 다 그래요. 걔네 매장 가보세요. 별 희한한 컬러 많아요. 메이크업 장사가 어쩔 수가 없어요. 안 팔리는 것도 내야 돼요. 아니 이 세상 모든 브랜드가 핑크, 레드, 버건디만 팔면 그게 무슨 브랜드에요.

- 과장님, 왜 제조사 계세요. 브랜드 사(社)가셔야 될 거 같은데?

- 졸업하고 된 데 간거예요. 대학 전공으로 화학 배운거랑 이렇게 관련없을 줄 몰랐죠 하하. 팀장님이 얼른 뷰티 키워서 저 써주시면 대박 잘할 수 있는데?


종찬은 은진에게 업계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는 역할을 했다. 타사 카더라 소식 같은 가십부터 실무적인 조언까지 주제도 다양했다. 하지만 절대 은진에게 가르치려 하듯 대화하지 않았다. 종찬은 그 선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알아서가 아니라 애초에 사람이 겸손하고 담백한 사람이었다. 매사에 열심이었고 그런 진심이 전해져 은진에게는 거의 일의 동반자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다른 제조사는 알아볼 생각도 안 했다.


점심 식사 후 커피는 회사에서 캡슐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황상무에게 가져갈 내년도 신상품 아이디어를 준비했다. 이미 지수 대표에게도 3차 보고까지 된 상태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1차 보고는 상품 기획안, 2차 보고는 컨셉, 3차 보고는 샘플 보고였다. 지수 대표는 은진과 종찬의 시너지를 믿어서 방향성을 완전히 트는 정도의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지수는 황상무에게 지수가 알고 있는 1~3차 보고 내용까지를 간단하게 보고 하고, 지수에게 최종 코멘트를 듣고 반영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샘플도 샘플이지만 아트워크 디자인 방향성을 정해야 해서 머리 속이 복잡했다. 지수는 사실 처방보다 디자인에 더 많은 인풋을 주었다. 화장품에 대해 소비자로서 갖는 정도의 이상의 인사이트는 없었지만, 상품 디자인은 패션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어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다.


은진은 지영 종찬과 황상무와 마주 앉았다. 준비했던 내용들을 천천히 차근 차근 설명했다. RUSH BRUSH의 판매 실적과 그 당시의 룩에 대해 설명했다. FW 상품은 섀도우, 블러시, 립이 될 예정이며 FW 패션 컨셉에 맞추어 'FLUFFY'라는 컨셉을 소개했다. 따뜻한 파스텔톤의 울 소재 스웨터가 시즌 메인 아이템이라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거기에 맞춰 FW에 어울리면서도 포근한 느낌의 파스텔톤 버건디 등이 있는 컬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파리 밀라노 뉴욕 컬렉션 북의 메이크업들을 보여주며 비슷한 류의 룩들이 유행이라는 것도 설명 했다. 황상무는 은진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종찬이 샘플을 꺼냈다.


- 종찬; 은진 팀장님 브리프 받고 저희가 만든 샘플에 대해서 1차 피드백을 반영했거든요. 먼저 립 보여 드릴게요. 립은 그 동안의 매트했던 보송보송한 피니시보다 조금 더 윤기가 도는 걸 두 셰이드 정도 만들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 황상무; 아, 근데.. 가만 보자. 우리 컨셉이..

- 지영; 여기 있습니다.

- 황상무; 그러니까. FLUFFY 아니에요? FLUFFY? 그럼 이런 세미 마뜨 여섯 가지 컬러 같은 게 어울리는 거 아닌가? 갑자기 왠 글로시한 립스틱 두 개지..?

- 은진; 아, 저희 겨울 옷 중에 패딩 기획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 패딩이 약간 은은하게 빤딱 거리는 소재거든요.

- 황상무; 은은하게 빤딱? 그게 머예요? 어떡하지 내가 잘 모르겠어서 컨펌을 해줄 수가 없는데. (지영 대리를 보며) 그 소재라도 좀 찾아봐줄 수 있을까요?

- 지영; 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나섬)

- 황상무; 컨셉이 확실해도 소비자들한테 전달될까 말까거든요. 더군다나 우리처럼 아직 Awareness가 떨어지는 브랜드는 더요. 기억에 각인이 되어야 하는데, FLUFFY랑 이 두 컬러가 좀.

- 은진; 일단 지수 대표님의 의견이 있으셨구요. 반영할 필요가 있어 보였어요. 매칭 되는 옷도 있었고.

- 황상무; 지수 대표님 그 동안 이런 말 해줄 분이 안 계셨나보다. 제가 한 번 말 해볼게요. 걱정 말아요. (눈 찡긋)

- 종찬; 그럼 저희 다음 섀도우 새로 만든 옵션들 좀 보여드릴까요? 일단 4구 섀도우 두개를 준비했는데, 1~3구 컬러들은 매트한 컬러고 나머지 4구에 펄감이 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요. 약간 1~3구의 컬러를 쓰고 맨 위에 하이라이터처럼 쓸 수도 있고 단독으로도 펄감 있는 섀도우로 쓸 수 있는. 근데 한 번에 컨펌 받으려고 펄을 좀 단계별로 점점 올려서 3단계로 가져와 봤어요. 여기 있습니다.


황상무는 무심한듯 손 끝으로 섀도우를 발랐다. 은진은 세단계의 펄이 들어간 샘플들을 손등에 차례로 발색해 보았다.


- 은진; 아, 지수 대표님이 말씀하신 수준은 2단계 정도 수준이셨던 것 같아요.


그 무렵 지영 대리가 들어 왔다.


- 지영; 상무님, 여기 패딩 소재 가져 왔습니다. 이 소재를 보시면..

- 황상무; 어머 지영 대리님 너무 고생하셨다. 근데 어쩌지. 볼 필요 없을 것 같애요, 우선 우리가 이 FLUFFY라는 컨셉을 갖다가 어떻게 상품 전체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인 것 같아서요. 옷이랑 매칭 되는거 너무 좋지, 중요하고. 근데 패딩이랑 매칭 된다고 컨셉을 흐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지수 대표님께 말씀 드린다고 했어요. 아유. 자기들 맘 다 알아. 내가 또 총대 매야지.

- 은진; 립 두 개 컬러는 따로 얘기하기로하고, 우선 섀도우 펄 단계를 볼까요?

- 황상무; 과장님, 성함이.. (명함을 뒤집으며) 김종찬 과장님, 코스모인터라고 하셨죠?

- 종찬; 네, 그렇습니다.

- 황상무; 메이크업 많이 하세요?

- 종찬; 네? 네, 스킨케어 메이크업 다 합니다.

- 황상무; 음.. 아니 뭐라고 말씀 드려야 될지 모르겠는데, 상처 받지 마세요. 그냥 제가 좀 직설적이라서요.

- 종찬; 네.

- 황상무; 촌스러.

- 은진; 상무님?

- 황상무; 3단계로 가져오실 때는 펄 입자 크기를 3단계로 하셔야되는데, 이건 그냥 같은 애매~한 크기의 펄을 더 많이 넣고 덜 넣고만 하신 것 같네요.

- 종찬; 아, 그 때 지수 대표님이 찾아주신 이미지를 많이 참고해서 그 정도 펄감을 주는 정도로 일부러 맞춘거거든요.

- 황상무; 이건 근데 글리터리한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섬세한 펄도 아니고. 약간 80년대 미국 마트에서 파는 섀도우 같애요. 호호호. 먼지 알죠. 나만 아나. 어머, 나 나이 티 내니?

- 종찬; 저희가 샘플을 좀 다시 뽑아볼 순 있습니다. 다른 브랜드도 저희랑 섀도우 하면 만족도가 높으시거든요.

- 황상무; 가만 있어보자. 내가 아멜리에 할 때 유일하게 한국에서 제조했던 제품이 있는데, 거기가 참 잘했는데 거기 종인 부장님 아직 계신가 모르겠네. 은진 팀장님 우리 코스모인터랑 컬렉션 다 해야 되나?

- 은진; 상무님 우선 이번 시즌은 시간도 그렇구요.

- 황상무; (잡지로 입을 가리며) 업체는 쫘야지.

- 은진; 네?

- 종찬; 말씀하신 부분 알겠습니다. 펄 입자로 배리한 샘플을 퀵으로 빨리 보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황상무; 휴. 하긴. 시간이 없긴 하네. 다음 주 초까지는 주셔야 저희가 지수 대표님하고 컨펌할 수 있을 것 같애요. 근데 잘 주셔야 컨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어쩌나.

- 종찬; 네 옵션을 좀 여러개 준비하시면 분명 맘에 드시는 게 있을 거예요. 은진 팀장님, 그리고 블러시는 별 코멘트 없으셔서 별도 준비는 안했습니다.

- 은진; 네, 블러시는,

- 황상무; 과장님 죄송해요, 블러시는 컬러 수정이 문제가 아니고 런칭 할지 말지, 몇 개 할지를 아직 못 정했어요.

- 종찬; 아, 그런가요? 근데 섀도우는 두갠데 블러시가 하나일 수도 있는..?

- 황상무; 아예 안하거나?

- 은진; 내부 조율이 좀 덜 되어서요. 블러시 가격이 좀 높다는 의견도 있었구요.

- 종찬; 알겠습니다.


은진은 종찬이 차라리 그렇게 알았으면 하는 거짓 이유를 댔다. 황상무는 솔직했고 다른 사람들은 불편했다. 그렇게 미팅이 끝낵느 은진은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원래 지수 대표에게도 공유하려고 했는데 황상무는 자신이 지수 대표에게 업체에 수정 시킬 것이 있어서 돌려 보내겠다고 할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마치 은진도 그걸 원하는 데 자신이 대신 말해주겠다는듯이 말하는 황상무의 말투에 은진은 황당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미팅이 끝나고 돌아가는 종찬에게 은진은 문자를 남겼다.


- 과장님 죄송해요, 새로 오신 상무님이 아직 업무 파악을 하고 계셔서, 맞춰 가는 과정이 좀 있는 것 같아요.

- 괜찮습니다 팀장님, 다 잘 될려고 이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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