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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Oct 22. 2019

상견례_3

지영의 어머니는 지영이를 자랑하면서도, 준호를 적당히 견제하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조심스럽지만 확고하게 기독교인사위를 원했다고 했다. 준호는 자신이 매주 교회를 가진 않지만 어릴 때는 교회를 매주 다녔었다고 했다. 요즘도 가끔 시간이 되면 예배에 가고 있으며 기도도 자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신실한 사람이어야 하며 결혼 후에는 매주 교회를 갔으면 좋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준호는 속 좋게 그래도 크게 개의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 장인 어른이 미래 사위를 테스트 하기 위해 억지로 술을 먹인 후 주사를 본다는 등의 이야기도 들은 터였다. 그것 보다는 마일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영이 준호의 부모님을 만나는 일 역시 마냥 매끄럽지만은 않았지만 큰 탈도 없었다. 준호의 어머니는 지영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머리부터 발 끝을 순식간에 스캔했다. 집안 어르신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형제 자매는 어떻게 되며 그들은 무엇을 하는지를 물었다. 혹시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주고 있는지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준호에게는 생활비를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며 결혼하고도 너희 둘이 잘 살기만 하면 되는 부모가 되어주겠노라고 했다. 지영의 부모님도 그러실 거라고 부모 마음은 다 같다고 했다. 지영은 대충 의도를 파악했다. 부모님도 일을 하고 계시니 따로 용돈 드릴 일은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두 집안에 서로 인사를 드리는 과정은 그럭 저럭 마무리가 되었다. 지영의 부모는 서울에 살았고,준호의 부모는 지방에 살았다. 상견례 장소는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준호 부모님을 생각해서, 터미널 근처의 적당한 한식당을 찾았다. 지영의 부모가 나이가 더 많아서 준호가 부모님을 잘 설득한 덕이었다. 식당은 지영이 선택해줬다. 블로그 후기를 보니 적당히 괜찮은 분위기인 것 같아서,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블로그 맨 마지막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저희 10월 21일에 7명 예약하려고 하는데, 방으로 예약 가능할까요?

- 상견례이신가요?


전화 받는 사람이 너무나 당연하게 예측해서 준호는 내심 안도했다. 상견례를 많이 하는 곳이라니 괜히 안심이 되었다. 특별하진 않아도 최소 안타는 되겠다고 생각했다. 예약 전화를 받는 사람은 친절하지도 친절하지 않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사오십대 여성의 관습적인 친절한 말투였다. 준호는 산업화된 결혼 시장에 첫 발을 내딛는 기분을 느꼈다. 결혼 관련해서 많은 것들이 산업 시스템화 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식당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상견례만 하는 식당은 아니었겠지만, 능수능란하게 상견례를 처리해낼 줄 아는 식당이 있다는 것은 굳이 새삼스럽긴 했다.


- 네, 그런데요.

- 메뉴는 어떻게 예약 도와 드릴까요?


준호는 항상 이 어법을 거슬려 하는 성격이었다. 서비스 업종에서 종종 듣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예약해주는 것을 굳이 ‘도와준다’고 표현하는 것은 왜일까. 도와준다라 함은 보통은 의무 이상의 무언가를 제공할 때 쓰는 표현이라고 알고 있는데, 추가적인 서비스를 줄 것도 아니면서 늘 도와준다고 말하는 것이 좀 귀에 거슬렸다.


- 메, 메뉴요?


메뉴를 알리 없는 준호가 당황하며 묻자 다시 능수능란하게 대답했다.


- 상견례면 보통 정식 코스를 시키시는데요, 4만원, 5만원, 8만원, 12만원 코스가 있으십니다.


그냥 너는 고를 것 없고 예산만 말하라는듯한 말투였다.


- 네, 5만원 짜리로 할게요.


4만원도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괜히 최저가를 시키기는 좀 민망했다. 1만원 차이는 큰 차이는 아니여서 면을 세우려고 쓸 수 있는 정도의 돈은 되었다. 이렇게 상견례 첫 관문을 통과하고 나니, 준호는 스스로가 괜시리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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