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춘프카 Aug 15. 2019

꿈이 후회로 바뀔 때 사람은 늙는다

2019년 8월 5일 월요일 저녁 8시

고향집에서 여름휴가 중


 친구를 만나기 전, 집 앞 편의점을 들렸다. 입구 문을 열자마자 내 시선으로 익숙하고 그리웠던 한 남자가 서있었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 차장님이었다. 7년 만의 재회다. 더 놀라운 사실은 차장님이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모습이었다. 왜 이곳에 계실까. 짧은 몇 초 사이 궁금해졌다.   


차장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아... 이름이 뭐였지? 아! 기억난다. 와, 진짜 오랜만이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떤 얘기부터 꺼내야 될지 몰랐다. 머뭇거렸다. 이내 차장님이 침묵을 깼다.   

 

그래. 잘 지내지? 글은 계속 쓰고?

네. 계속 쓰고 있어요. 덕분에요.

덕분은 무슨. 내가 뭐 너한테 해준 게 있냐.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차장님의 한 마디가 제겐 큰 용기였어요. 덕분에 여기까지 왔고요.' 맞는 말이다.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취업했다.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고, 일하시는 분들도 좋았다. 거친 입담을 자랑하시는 사장님이 때때로 불편하긴 했지만, 제때 들어오는 월급을 확인하며 대충 넘겼다. 사회초년생에겐 적지 않은 월급이었다.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진급까지 했다. 나름 괜찮은 첫 직장생활이었다. 딱, 여기까진 괜찮았다. 내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을 제외하곤.


 남몰래 품었던 꿈은 3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났다. 글을 쓰고 싶었다.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망하던 언론사는 다섯 번째 낙방을 한 뒤였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그 누구에게도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멋진 결과를 통해 짠, 하고 소개하고 싶었다. 내 꿈을. 그게 참 쉽지 않았다. 번번이 무너졌다.


 운이 좋았을까. 아니면 나빴을까. 그토록 지망하던 언론사는 내 시야에서 멀어지는데, 별생각 없던 회사에 덜컥 입사했다. 내게 생전 처음으로 '졸업 전 취업'이라는 미션을 선사하신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 같은 결과였다.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일단 입사하자. 퇴근하면 계속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거야. 1년 안에 승부를 내자.'


 주경야독. 퇴근과 동시에 대학 도서관을 찾았다. 새벽 1시까지 공부하고 글을 썼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힘들었다. 눈에 띄는 향상이 없었다. 박카스를 물 마시듯 마셔도 체력적인 한계는 극에 달했다. 일복은 얼마나 많은지. 점점 출근 시간은 앞당겨졌고 퇴근 시간은 가늠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치른 여섯 번째 시험도 낙방. 울고 싶었다.


 처음부터 헛된 꿈이 아니었을까. 헌책방에서 책 한 권 읽었다고, 기자를 꿈꾸고 글 쓰는 삶을 동경하다니. 세상에 실력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경쟁상대로 낄 수도 없을 그 무대에서 용쓰고 있지 않았을까. 할 만큼 했으니, 단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지금 직장에서 자리 잡고 적당한 때에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고 그렇게 늙어가는 삶도 나쁘지 않을 텐데. 내 인생에서 굳이 등장할 수 없는 장면을 그리고 있었을까. 스스로를 탓했다. 아픈데, 더 아프고 싶은 날이었다.


 그때였다. 종일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가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형이자 현 직장에서 11년을 근무했고, 몇 개윌 뒤 셋째를 출산할 삼 형제의 가장. 늘 온몸에 공장 기름 냄새가 가득했던, 그걸 훈장같이 생각하던 분이었다. 내 곁으로 다가와 "퇴근하고 뭐하냐. 저녁에 소주 한잔 하자."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기운을 빌렸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내 꿈을. 과거부터 현재까지 과정과 심정을 전했다. 말없이 듣던 차장님은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했다. 나는 조용히 소주잔만 기울였다. 차장님은 말했다. "니 삶을 살아라. 후회하지 말고. 결정할 때다. 아무도 탓할 사람 없다이가. 선택을 믿고 가라. 그게 전부다."


 진심을 담은 그 말에서 저릿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당시 마주했던 문장도 떠올랐다.'사람은 꿈이 후회로 바뀔 때 비로소 늙는다.' 그때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늙지 말자. 어떻게든 해보자. 노력했던 지난 시간과 고생한 나에게 기회를 주자, 계속.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괜찮다. 후회만 남기지 말자. 그렇게 결심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3시간 가까이 소주잔을 비웠던 차장님은 다음 날 내게 "무슨 말을 했었지? 기억이 안 난다."라고 말했다.


 이후 나는 내 삶을 살았다. 그 동력으로 지금까지 왔다. 다니던 첫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꿈을 향해 뛰어들었다. 우연한 기회로 언론단체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월급은 반토막 났지만 행복했다. 매일 글을 읽고 썼다. 즐비하게 놓여있는 언론 서적을 읽으며 공부했다. 언론사에 내 이름으로 칼럼을 쓸 수 있었고, 시사 라디오 DJ가 되어 3년 가까운 시간을 진행했다.



 차장님은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회복기간 중에 다니던 직장이 부도났다. 가까스로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한다. 아르바이트로 월, 화, 수 편의점에서 일한다.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우리 첫째 아들이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다. 시간 빠르제."


 큰 파도의 연속이었지만, 덤덤하게 말하는 차장님을 보고 안심했다. 예전 모습이 그려졌다. 몸에 잔뜩 배어있는 기름때를 훈장처럼 말했던 그 장면 말이다. 고단한 삶이지만, 차장님에겐 그것이 훈장이다. 멋진 남자. 편의점으로 계속 들어오는 손님들 덕분에 긴 대화는 못했다. 서로 바뀌지 않은 번호를 확인하고 인사를 나눴다.


차장님, 종종 연락드릴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하긴 뭘.  니 삶을 살아라, 안 까먹었제?


거짓말쟁이. 기억하고 있었구나.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https://youtu.be/GU05fN7WA4o

작가의 이전글 격려는 전염된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