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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Jun 16. 2021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꿈과 열정 그리고 쓰는 삶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어렸을 적부터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 학창 시절 쓰던 글 대부분은 일기나 편지, 가끔 착실한 학교생활을 뽐내듯 끄적였던 반성문 따위였다. 주변 친구들은 빈 종이 앞에서 머뭇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쓰는 게 왜 어렵다는 거지?' 좋은 문장이나 내용은 별개로 일단 쓰기 시작하면 '주저함'이 없었다.


서점도 자주 드나들었다. 읽는 책 대부분은 연애소설이나 시였다. 가슴에 닿는 문장은 수첩에 적어두고 훗날 써먹을 때를 고대했다. 다독가는 아니었지만, 여운이 깊은 책은 오랜 시간 아껴가며 읽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가슴이 쿵쾅거려서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은 날엔 독후감을 썼다. 평소 가까웠던 국어 선생님은 0순위 독자였다. 다 읽고 나면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솔직한 글이다. 더 노력하면, 특별할 것 같다."


나는 스무 살 이후 책 대신 사람을 분주히 읽었다. 어느 날, 평소 대화를 곧잘 나누던 선배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청춘은 아름다워>였다. 집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했다. 마음이 저릿했고, 뜨거워졌다. 같은 문장이 시선에 맴돌았다. 흔들리고 불안했던 청춘에게 위로하는 듯했다. 문장을 빈 공책에 썼고, 싸이월드 미니홈피 소개 글로 입력했다.


내 청춘의 찬란함을 믿는다.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을 내 청춘의 찬란함을 믿는다.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청춘이길. 조그만 감정에도 가슴 뛰는 청춘이길. 커다란 감정에도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 청춘이길.

-헤르만 해세, <청춘은 아름다워> 중에서




이십 대 시절, 스스로 던진 화두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였다. 반복되는 질문에 번민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우연히 헌책방 '영록 서점'을 알게 됐다. 수많은 책과 먼지 사이에서 새빨간 표지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것은 <기자로 산다는 것>이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대로 자리에 철퍼덕 앉아 읽었다. 치열한 현장, 오로지 성실과 글발로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그들에게 빠져버렸다. 마지막 책장까지 이르자 그동안 막연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쓰는 삶을 살아가자. 그리고 기자가 되자.'


호기롭게 결심했지만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다. 글쓰기와 기자 공부를 어디서,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할지 몰랐다. 다니던 대학은 로봇 팔이나 프로그래밍을 다루는 곳이었다. 전공과 무관한 꿈이었고, 제대로 조언을 받을 사람도 없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꿈을 왜 정했냐.'라는 핀잔과 조롱이 두려웠다. 반대로 하고 싶은 마음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오로지 M-H(맨땅에 헤딩)밖엔 없었다.


그날부터였다. 매일 쓰기 시작했다. 신문도 언론사별로 분류해 열심히 읽었다. 때때로 좋아하는 작가나 칼럼은 따라 쓰기도 했다.


처음 신문 지면에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칼럼이 기재되었던 순간. 원고지 10매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 각종 자료 조사와 취재를 거듭한 뒤, 며칠 밤을 새워가며 썼던 날들. 우연한 기회로 시사 라디오 DJ와 직접 방송할 대본을 작성하며 만났던 사람들. 아무런 제안도, 청탁도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미궁에 빠진 사망 사건을 수개월간 쫓던 기억. 모든 과정의 끝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기사를 쓸 수 있는 언론사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6년이 흘렀고, 끝내 지망하던 곳에서는 합격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게 내 실력이었다. 한동안 숙인 고개를 좀처럼 들 수 없었다. 괴로운 마음에 사고를 쳤다. 롤모델처럼 여기던 기자님께 메일을 보냈다. 썼던 이력서와 기사 여러 편을 첨부했다. 부족한 건 알지만,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좋을지 읽어봐 주시면 좋겠다며 피드백을 요구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답장 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은 간결했다.


글도, 마인드도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무언가가... 좌절할 건 없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우. 힘내시오.




시간이 흘렀고, 나는 여전히 쓰고 있었다. 대부분 넋두리였고 푸념이었다. 문득 아프고 위태로웠던 과거를 되돌아봤다. 여러 장면  일부를 글로 썼다. 학창 시절 반성문을 쓰듯, 거침없이 내려갔다.


발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특별하지 않은 내 경험에 수많은 댓글과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평범한 직장인부터 워킹맘, 학생 외 생면부지 만나본 적 없는 다양한 이들이 자신의 삶과 도전을 알렸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특별함을 찾으셨냐고. 당시 선뜻 대답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끝까지 쓰고 또 쓰다 보니, 조금은 특별해졌다고.


실패담이었지만, 그것을 기록하고 공유받는 과정에서 힌트도 얻었다. 지금,  순간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승패를 떠나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글을 쓰는 재료이자 동력이 된다. 쓰는 사람의 자질도 있지만, 평범한  글을 특별한 의미로 읽어주는 독자를 마주하며 용기를 얻었다.




여전히 매일 읽고 쓴다. 기록하고 흔적을 남긴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상을 기록한다. 그리고 올해의 끝자락,  출간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https://youtu.be/b5G8gyZVU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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