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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Jun 01. 2021

낯선 골목길과 신심 단련

일상의 장면과 문장들

초저녁의 고요한 어느 날이었다. 


약속한 시간까지 제법 긴 시간이 남았다. 잠깐 고민하다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적당한 온도와 바람 덕분에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 벌써 6년째 광주는 가끔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을 선사한다. 그날이 딱, 그랬다. 생경한 골목길을 따라 한참 걸다가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외벽의 커다란 창 너머로 공간 곳곳에 책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었다. 무언가에 끌리듯 그대로 문을 열고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했다.


카페는 1, 2층으로 나눠져 있었다. 위층은 열 평이 채 되지 않는, 다락방 같은 공간이었다. 테이블이 세 개 있었는데, 창가 쪽에 한 분이 책에 빠져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2층으로 자리를 잡았다. 1층도 나쁘진 않았지만, 정중앙 테이블에서 서로의 사랑을 성실하게 확인하는 커플을 마주하며 책을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내겐 낯선 침입자로 여겨질 테니까. 


겨우 자리를 잡고 책가방에서 이슬아 작가의 <신심 단련>을 꺼냈다. 나는 다른 이들이 열광하면 별반응이 없다가, 그 관심이 잦아들면 뒤늦게 쫓아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슬아 작가가 그런 경우였다. 왜 그녀를 열광하는지, 책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것 모르겠고 무척 재미있었다. 솔직하고 단단한 문장 덕분에 자주 밑줄을 그었다. 빈 공책에 문장을 기록하고 수집했다. 개인적으로 '독립 출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일과 돈'이라는 챕터가 특히, 좋았다. 


요즘 마음이 드믄드문 허했는데, 채워지는 기분이다. 앞으로 시작할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도 더 깊어진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을 마저 읽고, 아메리카노를 원샷했다. 그렇게 1층으로 내려가는데, 아까 봤던 커플은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있었다. 그들의 성실함을 동경하며, 피식 웃었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나쁜 일이 우리를 온통 뒤덮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쁜 일이 나쁜 일로 끝나지 않도록 애썼다. 우리가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고 어떤 일에서든 고마운 점을 찾아내는 이들임을 기억했다. 사랑은 불행을 막지 못하지만 회복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사랑은 마음에 탄력을 준다. 심신을 고무줄처럼 늘어나게 하고 돌아오게도 한다.”

이슬아 작가, <신심 단련, 헤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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